캥거루와 코알라

드디어 꿈에 그리던 호주에 도착했다. 시드니의 첫인상은 전반적으로 차가웠다. 뉴요커들이 미국 내 다른 도시 사람들보다 차갑다는 인상을 풍기듯, 시드니 사람들도 그와 비슷한 느낌을 풍겼다. 그렇다고 무례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단지 시크하고 쿨한 느낌이랄까. 다만 오페라 하우스는 명성에 비해 정말 볼 게 없었다. 오페라 하우스 자체보다 오페라 하우스 앞마당 바닥 갈라진 틈에 USB를 떨어뜨린 사건이 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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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킹맨션

환상적인 야경과 쇼핑의 천국, 금융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는 홍콩.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가다 당시 크리스토퍼 도일 촬영감독의 집이었던, 왕페이가 양조위를 훔쳐보던 지점에 이르러 고개를 까닥였다. “저기만 지나가면 다들 양아치가 돼.” 나는 무릎을 굽혀 앉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사 갔네. 크리스토퍼 도일이 저기서 훌라후프 돌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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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우리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말레이시아 유학생이자 대학 친구인 ‘쿠자이마’의 집을 찾았다. 그녀의 집은 쿠알라룸푸르에서 살짝 떨어진 방이에 위치해있었다.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고, 우리는 그녀와 그녀의 사촌 언니, 사촌 동생과 함께 시장에도 가고 페트로나스 트윈타워에도 갔다. 다음날, 타지에서 온 우리를 보기 위해 주변에 살고 있던 일가친척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가족들은 모두 이슬람교였고 때는 라마단 기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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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레랑스

나는 두 번째로 방문한 유럽에서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독일을 여행했다. 또다시 만난 파리는 설렘보다 반가움이 컸다. 샤를드골국제공항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이전에 에펠탑, 개선문, 루브르박물관 등 관광지 중심으로 돌아다녔다면, 이제는 퐁피두센터나 골목 곳곳을 누볐다. 강렬하게 기억나는 일화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독일 쾰른에서 열린 퀴어 페스티벌에서 겪은 일이다. 나는 그곳에서 일생일대의 신기한 경험을 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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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야옹! 골목에서 발견한 아기 길고양이는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외로워보였다. 가족들은 귀여운 새끼를 버리고 어디로 가버린 걸까? 간혹 아기 고양이들이 눈을 뜨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경우 대부분 어미에게 버림을 받는다고 했다. 우리는 녀석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녀석은 동물병원에서 개안수술을 받았다. 뒤늦게나마 세상을 보게 된 아기 고양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형편상 키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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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마 유리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인 대입 체제로 돌입! 제2외국어를 선택해야만 했다. ‘스페인어로 가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잖아. 좋아! 스페인어에 내 인생을 건다!’ 정원 미달로 폐지됐다. 젠장! 좀 전에 인생을 걸었단 말이다! 나는 할 수 없이 일본어로 갈아탔다. 이럴 수가! 그곳에는 엄청난 이벤트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 자매결연 고등학교 학생들이 우리 학교 일본어 반으로 견학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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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베이징 공항에 내리자마자 직원이 와서 중국어로 막 뭐라고 했다. 나는 중국어를 거의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가이드북에서 본 아무 말이나 했다. “게이 워 피엔이 디알(깎아주세요).” 다른 직원이 와서 얼굴에 대고 중국어로 한참을 떠들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너 사실 탕수육 먹었지?”라고 할 수 없어서 참았다. 만리장성을 가기 위해 신청한 그룹투어에는 미국인 할머니와 우루과이 가족, 칠레 부부 그리고 프랑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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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핑 버스

독일인 커플과 택시를 나눠 타고 도착한 베트남 하노이 시내. 소문대로 스쿠터가 너무 많았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돼 길을 건너는 거조차 힘들었다. 며칠이 지났다. 나는 거리의 무법자가 되어있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무작정 앞으로 걸어가면 된다. 그러면 스쿠터들이 알아서 다 피해간다. 괜히 요리조리 피하느라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 더 피곤해진다. 물론 다 믿지는 말아야 한다. 방심한 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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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 아니에요

오랜만에 등산을 하기로 했다. 난생 처음 가보는 산이었다. 길을 헤맸다. 허름한 동네로 들어섰다. 할아버지 한 명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아저씨, 봉화산이 어디예요?” “나?” ‘그럴 리가 있냐!’ “아뇨, 아저씨 말고 산이요.” “나?” “아니요, 산, 산.” “나?” 자기 자신을 산의 크기로 보고 있었다. 한번은 식당 저편 테이블에서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려왔다. “야! 해!” 할아버지들이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야!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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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마루 고등학교 3

친하게 지내다 어느 순간 멀어진 고등학교 동창이 한 명 있었는데, 어렸을 때 그 친구네 집에 가면 항상 팬티만 입고 있던 형이 있었다. 그 형은 친구가 뭐라고 하면 언제나 이렇게 대답했다. “닥칠 것!” 그게 그 사람한테 들은 유일한 말이었다. 공부를 지지리도 안했던 그 형은 결국 지방 전문대로 진학을 했고 군대를 다녀와 복학을 했다. 학교가 없어졌다. “이상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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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속의 공주

이 남자, 내가 처음이 아니란 말이야? 난 처음인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이 여자, 내가 처음이 아니란 말이야? 나도 처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떻게 여자가 그럴 수 있어? 환상이다. 만약 몇 년 전으로 돌아가 내가 그 사람의 첫 연애 상대가 된다면 현재 내가 사랑하는, 지금 좋아 죽겠는 그 사람의 모습이 아닐 수 있다. 그래서 어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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