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일기장

1992년 1월 3일. 엄마의 일기

채림이는 말도 잘했지만 노래도 참 잘했단다. 말을 시작하면서 한참 배워갈 즘 엄마가 동요 노래 테이프를 자주 들려준 탓인지 노래를 제법 잘하고 이제는 다 외우다시피 하는구나. 그런 모습을 보면 엄마 마음도 참 좋아.

어렸을 때부터 너무 많은 걸 알게 되면 나중에 정작 중요한 시기가 됐을 때는 나태해지고 시큰둥해진다고 하던데, 그래서 엄마도 조금은 걱정될 때가 있어. 채림이도 벌써 동요 몇 곡절 부른다고 이것저것 섞어 부르고, 때론 말도 예쁘게 하지 않아. 반성하세요.

 

1992년 1월 2일. 엄마의 일기

엄마는 어렸을 적부터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라온 탓인지 채림이에게 조금 완고하고 엄한 것 같아. 남들은 “애들이 다 그렇지 뭐” “아기니까” “크면 다 알아서 해”라는 둥 말하곤 해. 엄마는 남들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싫었어. 때론 채림이가 안쓰럽고 딱할 때도 있지만 그 나름대로 잘 따라주는 편이라 엄마가 한결 수월하단다.

하기야 채림이는 벌써 남에게 칭찬을 듣고 있어. 저 아이는 먹고 난 과자 봉지나 과일 껍질을 꼭 쓰레기통에 버리고 인사도 참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 때면 엄마 마음이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

엄마 어린 시절로 돌아가자면 채림이 외할아버지가 얼마나 무섭고 엄했던지 식사할 때는 소리도 없이 먹어야 했고 발뒤꿈치를 꼭 들고 걸어야 할 정도로 엄격한 분이셨어. 그래도 엄마는 제일 막내인지라 많은 편리와 보호 아래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자랐지. 그런데 불행하게도 외할아버지는 오래 살지 못하시고 엄마가 국민학교 6학년 때 돌아가시고 말았어.

자꾸만 슬퍼지고 눈물이 나오려 하니 오늘은 그만 쓸게.

 

2009년 12월 29일. 딸의 일기

10, 20, 30… 숫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살아야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이 너무나 많은데… 지난 열아홉, 스무 살을 맞이하던 때엔 시작되는 20대를 어떻게 해서든 행복하게, 많은 추억으로, 잊을 수 없도록 하루하루 꽉 채워가며 보내야 될 것 같은 무언의 압박에 시달렸다. 덕분에 되레 별다른 추억거리 없이 흘려보냈던 것 같아.

조금 성숙해가는 것뿐이지 나이를 먹는 게 아니라는 사고를 가지고 싶다. 스물둘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 이제 조금씩 인생이 시작되는 것 같은데 그 시절 나는 왜 그리 조급했을까?

자유롭고 행복하게, 그러면서도 미련은 담지 않은 채 자유 그 자체의 삶을 살고 싶다.

 

2011년 11월 30일. 딸의 일기

지금도 이따금씩 믿어지지 않는다. 현실인지 꿈인지 오래된 옛날인지 엊그제인지… 아쉬운 생각, 감정, 말, 행동. 지금이라도, 나중에라도 전할 수만 있다면.

분명 생생한데 생생하지 않다. 잃는다는 건, 잊어가는 사람도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사람도 너무 슬프다. 내 소중한 기억들을 더 이상 놓치고 싶지 않은데… 마음이 따끔거리는 4시. 그립고 그립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지금이 몽중이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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