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건 무서워

글 쓰는 걸 무서워 하는 내가 ‘고텐션’의 필진이 되었다는 건 아이러니하다. 필진으로 선정되었을 때의 기쁨도 잠시, 또 다시 그 깊은 글쓰기와 창작의 구렁텅이로 빠지고 말았다. 좋은 글, 나다운 글을 쓰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필진에 지원하기는 했으나…… 이리저리 치여 바쁘다는 이유로 며칠간 미루다, 이제야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서워서 피하다, 더 이상 피할 수 없어 앉았다.

초등학생 때, 난 글을 잘 쓰는 아이였다. 선생님들로부터 칭찬도 많이 듣고, 엄마의 눈치가 보일 때면 상장을 하나 가져다 주려고 교내 글짓기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나는 내가 글짓기 신동인 줄 알았다. 또래에 비해 책을 조금 많이 읽는 편이었고 논술 그룹 과외를 다녔다. 글을 쓸 때 어떻게 생각을 정리하고 써야 하는지에 대한 매뉴얼을 배웠다. 어쩌면 나는 글을 잘 쓴 것처럼 보이는 법, 당시 어른들이 좋아하는 글을 쓰는 법을 배운게 아닐까 생각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다녔던 논술 과외의 힘은 꽤나 커서,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글쓰기로 받은 상이 여럿 되었다. 나는 내 글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상을 받았다는 건 대외적으로 잘 쓴 글임이 입증된 것이고, 내 글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글짓기로 꾸준히 상을 받았다는 게 내 자존감을 구성하는 큰 뿌리 중 하나였다는 걸 그때는 몰랐으나, 이후 내게 찾아 온 슬럼프를 통해 느끼게 되었다.

대학생이 되었고, 성인이 되었다. 스물 한 살이 되었다. 그 즈음 난 나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글만 기계처럼 뱉어냈다. 쉽게 말해 개성이 없었다. ‘개성이 없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빤하고 쉬운 평가였지만 그럼에도 타파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상을 받기 위해 글을 썼고, 어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글을 썼다. 그러나 스물 한 살의 나는 이미 어른이었고, 더 이상 내 글을 평가해 줄 ‘어른’은 없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내 글은 여전히 초등학생, 고등학생에 머물러 남들이 잘 봐주기를 기대하며 혼자 들떴다. 나는 내가 특별한 줄 알았다. 누구든 주제만 던져 주면 휙휙 써낼 수 있을 거처럼 글에 대해서 만큼은 자부심을 안고 살았다.

그러나 그게 모두 내 글이 아니었으며, 보이기 위한 글이였고, 모두가 이를 눈치 챘으며 나만 몰랐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평범했다. 내 주변 친구들이 내게 쓴 글을 보여줄 때마다 절망했고 질투했다. 그러나 티 내지 않았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거 같은 그 친구들을 결코 따라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내가 평범하다는 걸 인정하는 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그걸 인정하면 할수록 글을 쓰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더 이상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글 쓰는 게 무섭기까지 했다. 또 다시 구린 글을 쓸 까봐, 구린 글을 쓰는 나를 용서할 수 없다. 그렇게 수년이 흘렀다.

2017년의 어느 날.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안 될 거 같은 소설이랄지 글이랄지, 그런 걸 쓰고 싶은 열망이 마음을 가득 채운 적이 있었다. 그날 그 분위기, 그 마음, 그 공기가 아니면 절대로 쓸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나는 뻑뻑한 눈을 깜빡이면서 삼일 동안, 새벽 세시를 넘겨 가며 글을 썼다. 처음으로 산 맥북 메모장에다가, 정신없이 나를 채우는 그림들을 적어 넣으면서 환희와 불꽃이 다시 나를 채우는 걸 느꼈다. 그건 정말로 내 글이었고, 마음으로 낳은 새끼, 뭐 그런, 소중한 글이었다. 그리고 그해 크리스마스 날, 노트북으로 메모장을 수정하다가 절반을 날려 먹었다. 씨발, 씨발… 내 생에 최악의 크리스마스였다. 그걸 날려 먹은 카페에서, 나는 두 시간을 울었다. 남자 친구와 헤어져도 이럴 순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파서 노트북을 붙잡고 꺽꺽대며 울었다. 카운터에 있던 직원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울면서 생각했다. 나는 정말이지, 글을 쓰고 싶었구나. 오랜만에 찾아 온 이런 기회를 커맨드 씨를 눌러서 복사했었어야 했는데, 멍청하게도 컨트롤 씨를 눌러서 날렸단 말이지……

그 후로, 나는 내가 글 쓰는 걸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동시에 글을 쓰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게 되었다. 날려 먹지 않은 절반의 글은 아직도 내 맥북에 저장되어 있다. 언젠가는 완성하고 싶다. 남들이 쓰레기 같은 글이라고 욕할지언정 나만은 여전히 사랑하리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이 아니면 이 글을 쓸 수 없을 거 같은 확신에 찬 느낌이 다시 찾아왔을 때 놓치지 않고 소설을 완성할 수 있으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다시 글을 써야 한다.

누가 이런 글에 관심을 가져 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쓰게 된 이 글에 내가 고텐션의 필진이 된 이유를 적었다. 너무 일기스러워 민망하다. 끝까지 읽어 준 당신에게 고맙다. 앞으로 글쎄, 무섭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쓰는 절박하고 똥줄 타는 심정으로, 고텐션에 글을 쓰도록 하겠다. 여러 가지 다채로운 글을 쓰겠다고 나 자신과 약속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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