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젠과 페미, 서로 친구가 되면 어떨까?

언젠가는 꼭 글로 정리해 보고 싶었다. 요즘 트랜스젠더의 정체성에 관한 논의가 많아 나도 흔적을 남겨 보고자 한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젠더를 변경한 사람들을 화두로 써 보고자 한다. 젠더를 변경했다는 표현이 맞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나는 예전부터 트랜스젠더들을 차별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느껴왔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인터뷰 등에서 보았던 트랜스젠더들은 솔직히 말해 불쌍했다. 내가 뭐라고 그들을 불쌍히 여겼는진 모르겠지만, 그땐 그랬다. 그들은 원치 않게 남성으로 태어났고, 어쩌면 스스로 사고하던 순간부터 자신을 여성으로 생각해 왔다는 거다. 원치 않는 몸으로 태어나 남몰래 자신을 여성이라 생각하면서, 여성스럽게 입고, 화장하고, 여성에 가까운 취미와 행동을 해 왔다고 했다. 이제 당당히 자신에 대해 밝히고 여성으로 살아가겠다, 더 이상은 숨지 않겠다는 그들에게 세상의 시선은 냉담했다. 이제는 딸이 되겠다는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분노했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다가도 화가 나 얼굴이 벌게졌다. 냉담한 세상의 눈빛을 겪는 트랜스젠더들이 불쌍했다.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남성적인 뼈대나 얼굴의 굴곡을 가지고 눈물을 흘리는 어설픈 모습이 처량해 보였다. 그래서 불쌍했고,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페미니즘 세미나에서 ‘N개 젠더설’에 관해 배웠던 적이 있다. 세상에 N명의 인간이 있다면 젠더도 N개다. 자기 자신을 특정 젠더로 인식하는 게 자유라는 내용을 배우며 꽤나 충격을 받았다. 그럴 수 있구나. 맞는 말이다. 자신의 신체가 어떤 성(sex)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성 역할(gender role)은 다를 수 있는 거니까. 트랜스젠더 등의 사람들이 자신의 젠더를 무엇으로 정의하든 성별에 상관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거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애초에 고정적인 성 역할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페미니즘을 알고 체화하고 있었다면 굳이 여성의 모습으로 신체를 바꾸거나, 사회 통념이 “여성적”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행동(화장, 치마 입기, 머리 기르기 등)을 하지 않고도 자신을 여성이라는 젠더로 정체화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실제로 여성으로 자신을 정체화한 트랜스젠더들 대부분이 보여 주는 모습은 페미니즘이 거부하고 반대하는 사회 통념적 “여성”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어쩌면 N개 젠더설에 부응하는 이들이 반페미니즘적, 여성에 대한 대상화와 사회 통념적 여성의 모습을 재상산하고 있는 거다. 일전에 내가 불쌍히 여겼다던 그들 역시 모두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페미니스트가 아닌 트랜스젠더 여성이 많겠지. 이게 문제다. 여기서 나는 복잡해졌다. 나는 그저 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인정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던 거 뿐이었다. 페미니즘을 알고 난 뒤, 이 모든 게 뒤엉켜 버렸다.

물론 내가 한국에 사는 모든 트랜스젠더 여성을 본 적이 없고, 극히 일부 TV나 유튜브같은 매체를 통해 봤을 뿐이니, 어느 정도 오류를 범할 수는 있다. 분명 통념적 여성의 모습을 하지 않은 트렌즈젠더 여성도 있을 거라는 사실을 감안하고 있다. 목숨 걸고 여성이 되기 위해 천문학적 비용의 수술을 하는 이들의 절박함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을 비하할 의도 역시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트랜스젠더 또한 여성주의와 함께 가야 한단 거다. 서로 지지할 수 있어야 한다. 트랜스젠더라면(그게 남성에서 여성이든, 여성에서 남성이든) 적어도 여성 혐오는 하지 말아야 한단 거다. N개 젠더설도 사람에 따라 동의/비동의로 나뉘겠지만, 어찌되었든 ‘N개 젠더’라는 학문적 용어를 만들어 낸 것도 페미니즘이며 젠더를 스스로 정체화할 수 있다는 개념을 만들어 낸 것도 페미니즘이다. ‘적어도 여성 혐오는 하지 말라’는 말은 상당히 많은 걸 내포한다.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하지 말아야 한다. 사회 통념에서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그대로 따르거나 지지하지 않아야 한다. 태어날 때부터 여성이었던 이들에 대한 비하 발언이나 비교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걔네’라는 표현을 하지 말아야 한다. 성매매를 하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 성 역할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 자신은 남성의 신체를 가졌으나 치마를 입고 화장을 하고, 머리를 기르고 고데기를 하면서도 욕 먹지 않기 위해 여성이 되고자 했고, 그래서 트랜스젠더가 되었다고 말을 한다면 그야말로 가부장제 남성 중심 사회의 커다란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여장 남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통념과 편견이, 그가 여자가 되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 행위를 용서받지 못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를 트랜스젠더로 만든 건 가부장제다. 남성에 대한 통념이다.

이 모든 걸 전복할 수 있는 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결론은 트렌스젠더와 페미니즘은 여성 혐오와 성 통념을 타파하고 고무적 동지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단 거다.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고, 결코 합의될 수 없는 논의들이 존재하겠지만 고정된 성 역할의 타파와 반여성 혐오의 측면에서 ‘트젠’과 ‘페미’는 함께 걸어가야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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