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i탈조선記 : 시칠리아 9191km episodio 0. 공항버스

2017년 12월 16일 아침. 뜨신 물로 샤워를 하는데 초인종이 다급하게 울렸다. 머리에 수건을 대충 두르고 나가 보니 경비 아저씨가 공구 상자를 들고 서 있었고 우리 집 수도관에서 온천 수맥이 터진 듯 뜨거운 물이 펑펑 터져 나오고 있었다. 유독 추웠던 이번 겨울에 수도관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다 결국 견디지 못한 것이다.

얼마나 추웠냐면, 김이 폴폴 나는 뜨거운 물이 바닥에 닿자마자 서걱서걱 얼어버렸고, 복도 끝까지 흘러버린 물은 벌써 빙판이 되어 있었다. 결국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한 시간 가까이 복도에 쭈그려 앉아 얼음을 깨야 했다. 이게 뭔 짓인지‥. 나는 내일 이 나라를 뜨는데‥. 시칠리아 날씨를 확인해보니 영상 18도였다. 정말이지 너무 추웠다. 어서 이 혹한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발코니를 내리쬐는 남쪽 나라로.

그렇다. 나는 내일 이탈리아에, 이탈리아 남부 섬 시칠리아에 가서 68일 동안 머물기로 되어 있었다. 이탈리아인 남자친구는 겨울마다 시칠리아 고향 집에 돌아가는데, 나도 따라가기로 했다. 나는 기념품 가게에서 최저 시급 알바를 하며 조금씩 비행기 표 값과 체류비를 모았다. 드디어 때가 온 것이다.

2017년 12월 17일 새벽. 공항버스를 타고 달리고 있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할 예정이라 시간은 넉넉했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출국 7일 전, 부모님께 이탈리아 남자 친구 집에 가서 68일간 지내다 올 거란 사실을 말하지 않았단 걸 깨달았다. 사실 부모님은 내 남자 친구가 외국인인 줄도 모르고 있었다. 한국인은 한국인을 만나야 한다, 문화가 달라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 외국인은 이혼을 쉽게 한다, 외국인은 문란하다, 외국인이랑 결혼한 사람들은 다 날라리 양공주다.

그런데 외국인 남자 친구 집에서 2달을 무전취식하겠다? 천하의 수치와 민폐가 따로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출국하는 날까지 말하지 않기로 했다. 실제로 베트남에 가려 했을 때도 부모님이 반대해서 안 가는 척하다가 하이퐁에 도착해서야 보이스톡으로 알린 전적이 있었다. 이미 거기 가 있다는데 뭐 어쩔 거야?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부모님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동생이 귀띔해 놓은 것이다. 놀란 건 부모님이 그 사실을 알고도 욕을 하거나 말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좋은 곳 가서 좋은 경험 많이 하고 쉬면서 우울증도 치료해라.” 그것이 엄마의 답변이었다. 난 좋은 경험(도대체 무슨?)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우울증을 치료하러 가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이 진절머리 나는 혹한과 헬조선으로부터. 온갖 혐오와 불합리로 가득한 이 땅으로부터 단 100m라도 떨어질 수 있다면 나는 언제든지 여권과 팬티만 들고 훌쩍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과 68일을 떨어져 지내는 걸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방학에 맞춰 고향에 따라가기로 한 것이다. 그뿐이다.

물론 68일 후엔 다시 이 땅에 돌아와야 한다. 지금의 나에겐 진짜로 헬조선을 떠나 다른 나라에 정착할 자금과 능력이 없다. 완전한 탈조선은 불가능하고, 어차피 돌아와야 한다면, 최대한 많은 날을 이 땅 바깥에서 지내기로 했다. 보통 그걸 ‘여행’이라고 하지만 나에겐 ‘탈조선’이나 마찬가지이다. 비록 반쪽짜리 ‘semi탈조선’일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나는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ㅡ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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