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sula K. Le Guin] 낯선 존재의 안도감

<아홉 생명> 어슐러 K. 르 귄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행성 리브라는 죽어있는 곳처럼 보인다. 죽음으로 감싸진 행성에는 생명을 품어줄 수 있는 신이 부재하다. 고귀한 생명이 무엇인가에 대해 답해줄 신이 부재한 곳에서, 생명의 가치는 가벼워졌다.

퓨와 마틴은 참새호 발사대에 속한 인간들이다. 그들은 리브라 실험 임무 기지에서 클론 10명과 만난다. 인간 ‘존-차우’의 우수한 유전자를 나누어 가진 10명의 클론은 동일한 외관을 가진다. 클론의 행동양식은 알파벳 순서로 정렬되어 일의 능률을 위해 분리되었다. 각기 다른 일의 능률을 위해 키워진 육체는 곧 사유의 독립으로 이어졌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사유의 독립이 가능한 생명체이다. (단, 사유하지 않을 뿐)

두 인간은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젊음을 낯설게 바라본다. 인간은 클론을 통해 존재의 타자성을 자각한다. 즉, 인간은 자신의 사유 과정을 계속해서 인식한다. (비록 자학의 방식일지라도) 그들은 클론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존엄성을 확립한다. 시간을 지연시킬 수 있는 사유의 과정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존재를 굳건하게 만들어준다.

인간은 끊임없이 질문한다. ‘클론은 인간인가?’

지구에 대기근이 찾아왔을 때, 영국은 모든 생명이 동일하다는 철학적 전제로 생존해냈다. 영국의 인간들은 존엄한 생명을 획득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사유의 과정을 확립했다. 영국의 철학적 전제는 클론의 행동양식에 고스란히 포함되었다. 클론은 ‘공평한 자의 생존법칙’을 공유한다. 그들은 인간이 가진 철학적 논제를 적용시킨 새로운 인간이다.

인간은 클론을 만들었다. 인간은 예상 가능한 범주 내에서 클론들이 우수한 능률을 발휘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다. 클론이 가진 생명의 무게를 약화시키고자 일의 능률만을 위해 존재하도록 요구했다. 인간은 클론에게 유전적 열등감을 느끼며 그들과의 차별성을 발견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유한다.

반면, 클론은 사유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시간을 지연시키는 방법을 학습하지 못했다. 클론에게는 타자가 부재하다. 동일한 행동양식이 입력된 생명들 틈에서 그들에게 욕망의 대상이 부재하다. 긴장이 없기에, 활력 또한 부재하다. 자신의 주 목적(리브라에서 효율적으로 광산을 채취해야 하는 일)을 위해서 사유의 과정을 중단시켰다.

리브라에 찾아온 ‘지진’은 인간과 클론의 생명의 무게에 대해 답한다. 리브라의 예고 없는 재해는 인간과 클론에게 모두 적용된다. 그들은 함께 약하다. 지구의 대기근과 리브라의 지진은 인간과 클론을 동일한 존재로 인식시킨다.

클론은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10명의 동일한 유전자가 나누어 가진 각각의 육체는 자신의 역사다. 카프는 다른 아홉 생명의 죽음을 공유했다. 그는 타인의 경험을 공유했으며, 경험을 통해 아홉 생명의 사유를 공유했다. 아홉 번의 죽음으로 온전히 자신을 획득한 카프는 두 인간의 관계 속에 흡수되었다.

“이 친구는 외로울 때 어떻게 하는지 몰라. 이제 그걸 배워야 해.”

카프는 타자를 통해서 자신을 보는 능력이 부족했다. 그는 동일성이 극대화되어 차이가 삭제된 집단에 속했었다. 리브라에는 또 한 번의 지진이 찾아온다. 두 인간이 참새호에서 나간 시간, 카프는 드디어 혼자만의 시간을 체험한다. 그는 한 사람 몫의 저녁을 준비하여 먹는다. 자신을 위한 공간에서 음악을 듣는다. 어린아이의 꿈 속 같았던 시간 동안, 그는 사유할 수 있는 근대인의 출발에 선다.

두 인간이 참새호로 복귀했을 때, 침묵은 사라진다. 카프는 자신이 실제 한다고 자각했다. 상대방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타자화된 자신을 봐줄 다른 생명체를 발견했다. 타자화된 자신을 상대방의 눈에서 발견하는 사회적 관계를 인지한 것이다.

카프는 존재한다. 자아를 희생하고 포기하면서 얻게 되는 ‘절대정신’의 순간에 놓인다. 객관화된 ‘나’를 거쳐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 즉, 타자화된 ‘나’를 거쳐서 스스로 발달할 것이다. 그는 두 인간의 새로운 관계를 통해서 새로운 자아와 만나게 될 것이다. 달라진 자신의 자아를 마주할 것이다.

독자는 복제된 인간의 성장 이야기를 통해서 안도감을 느낀다. 복제인간을 통해 근대적 인간의 성찰을 다시 한번 발견하고자 한다. 근대 사회에서 ‘햄릿’캐릭터는 사유를 선물해 준 ‘최초의 근대인’이다. 독자는 자신이 사유하고 있는 존엄한 존재임을 증명하고자, 복제인간에게 햄릿과 같은 사유의 과정을 부여했다.

또한, 복제인간은 타자성에 대한 현대사회의 고찰을 담아내도록 발전되었다. 인간은 복제인간의 사유 과정으로 위안 받는다. 근대사회에서 햄릿에게 그 역할을 부여했다면, 현대사회에서는 복제인간에게 휴머니즘을 빌려주고 재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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