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화장하고 꾸미는 게 미덕일까?

오전 9시가 되기 3분 전, 단편 소설 수업을 들으러 교실에 들어 간다. 주변을 슬쩍 둘러 보고 나니 평소처럼 살짝 민망하다. 츄리닝과 후드티를 입고 화장을 하나도 안 한 학우들 사이에 치마를 입고 풀 메이크업(화장을 안 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리하자면, 풀 메이크업은 다음과 같다: 썬크림, 프라이머, 파운데이션, 파우더, 볼터치, 약간의 음영 넣기, 하이라이터, 눈썹, 아이섀도우, 아이라이너, 마스카라, 립스틱)을 한 나는 자리에 앉는다. 교환 학기를 보내기 위해 필라델피아에 있는 템플 대학교를 다니기 시작한지 몇 달이 지나도, 몇 년 동안 한국에서 했던 꾸밈을 놓지 못한다.

외국에 사는 친구들에게 일반적인 한국 여대생의 모습을 설명하지 않아도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엄청 신경 쓰기로 유명하잖아.” 한 친구가 말한다. “미국에서는 다들 레깅스에 반팔 티 하나 입는데, 난 네가 운동복을 입은 걸 본 적도 없어.”

사실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 한국에선 꾸밈의 기준이 전반적으로 높아 거기에 맞춘다 해도, 겨드랑이 제모와 브라마저 의무가 아닌 선택인 미국에서 왜 여전히 일찍 일어나서 40분 동안이나 꾸밈을 하는 지 모르겠다. 예뻐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 정도로 꾸미는 게 더 편해서다.

최근 마케팅 전략으로 페미니즘을 사용하거나 화장과 노출로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뭘 좀 알고 어느 정도 잘 나가는 젊은 여성은 각종 꾸밈으로 empowerment(자존심이나 사회적 권위를 부여 받는 것을 칭하는 단어로서, 영어권 사회에서 거의 매일 볼 수 있다)을 받으라는 논리이다. 롤모델로 세워지는 여성은 당연히 능력 있고 자신감이 높지만, 무엇보다 예쁘다. 타고난 예쁨이 가장 선호되지만, 그런 경우는 흔치 않으니 독하게 다이어트/몸매 유지를 하고 옷을 잘 입고 화장을 잘 하는 여성이 여성의 우상이다. 평범함을 화려함으로 얼마나 자연스럽고 세련되게 감추는 지가 일종의 능력으로 여겨진다. 꾸미지 않으면 자신을 존중하지 않거나 자신감이 없는 여성 취급을 받는다.

“예쁘지 않은 여자는 없다. 게으른 여자만 있다.”라는 말을 듣고 동의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언제부터 예쁨과 꾸밈이 미학이 아닌 미덕의 표시가 되었을까?

물론, 화장을 하지 않고 나간다고 대놓고 누군가가 이런 얘기를 읊는 건 아니다. 살면서 이런 얘기를 구구절절 들은 적도 없다. 하지만 여자로 길들여지고 여자로 살고 있는 사람이면 위 논리를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그 논리를 따라 살고 있으니까. 언젠가부터 발톱에 매니큐어를 바르지 않았다고 샌들을 신지 않고 자신의 유두색이 너무 어둡다고 걱정하고 있으니까. 최근에 눈 흰자에 있는 핏줄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유튜브 영상이 올라온 것도 봤다. 이젠 눈 흰자마저 신경을 써야 하는 부위가 되었나 보다.

전 세계적으로 여자가 예쁘기를 요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이 유독 심하다는 걸 깨닫으려면 지구 반대편까지 가야 알 수 있나 보다. 귀국하기 전날까지 나는 안전하게 외출하기 1시간 30분 전부터 준비하기 시작한다. 만나려는 친구는 머리를 묶고 립스틱 정도만 바를 걸 알고 있어도 나는 눈덩이에 섀도우 4개를 겹쳐 바른다.

성인 여자로서 어느 정도 꾸며야지만 사회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코르셋”이라 불리는 이 꾸밀 의무를 무시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직장에서 “예의”를 갖추기 위해, 무시를 당하지 않기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한 게 암담한 현실이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사는 것이 그저 자연스럽다고 생각하진 말자. “왜” 나를 꾸며야 하는지, 왜 어느 정도 예뻐야만 마음이 편한지를 숙고하는 게 너무나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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