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소녀

 여름이 지나고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코트를 입고 게임 숍으로 출근했다.
 헉. 저 여자애 이영이랑 무지 닮았다! 키도 작고 갈색 머리에 다리 짧은 것도…….
 “명백 오빠! 끝나고 놀자며? 웬일이래?”
 때마침 소란스럽게 이영이가 등장했다.
 “이영아, 마침 잘 왔다. 저기 서 있는 여자애 봐봐. 쟤 너랑 엄청 닮았어. 생긴 게 완전 판박이라니까!”
 “뭐라고? 말도 안 돼. 내가 더 예뻐, 바보야……. 어? 대박! 진짜네?”
 이영이는 얼음이 되었다.
 “오빠, 그래도 쟤랑 나랑 둘 중에 누가 더 예쁜 거 같아?”
 “오잉?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똑같이 생겼는데?”
 “대박! 죽을래?”
 “장난이야. 당연히 우리 이영이가 더 예쁘지. 그걸 말이라고 해?”
 후유. 위기를 모면했다.
 초저녁 시간대라 매장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우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해서 수다를 떨었다.

 “있잖아, 예전부터 계속 말할까 말까 망설였는데 그냥 말할게. 음, 그러니까 말이야, 오해하지 말고 들어. 나 언젠가부터 죽으려는 사람들을,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자꾸 봐.”
 이영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오빠, 영화 식스 센스 봤어?”
 “와하하!”
 나는 이영이의 말에 폭소를 터뜨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구하게 돼. 나도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해내고 있는지 모르겠어. 그냥 그 상황이 오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돼.”
 이영이는 사뭇 진지해졌다.
 “헐, 진짜구나? 나한테 처음 털어놓는 거야?”
 “아니, 주변 애들은 이미 알고 있어. 오래전에 말했거든.”
 이영이는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오빠.”
 “응?”
 “오빠, 초능력자야?”
 나는 실소하며 대답했다.
 “아니, 무능력자야.”
 이영이는 입술을 샐쭉거렸다.
 “음, 근데 말이야. 언제부터 그런 사람들이 나타나는 건데? 무슨 계기라도 있어?”
 “아, 그게…….”
 나는 노망의 죽음을 언급하지 않고 적당히 얼버무려 버렸다.
 “아이고, 근데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가는 거야! 이러다 또 사장이랑 마주치겠네.”
 “에그, 내가 지켜 줄게.”
 “피, 웃기시네. 도망갈 거면서.”

 그렇게 수다를 떨던 사이, 이영이와 닮은 소녀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어디로 가 버렸을까? 난데없이 그 소녀가 왜 자꾸 머릿속을 맴도는 걸까? 그러고 보니 아까 그림자를 확인 못 했네. 그거부터 확인할 걸, 또 까먹었잖아!
 나는 이영이와 국제전자센터를 빠져나왔다. 한동안 잠자코 있던 이영이는 얼굴을 붉히며 조그맣게 속삭였다.
 “오빠, 있잖아. 우리……. 손잡을래?”
 그때였다! 이영이와 닮은 소녀가 저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역시 그림자가 없잖아! 꺼림칙한 이유가 있었어. 어디로 가는 거지? 저긴……. 설마?
 “이영아, 진짜 미안한데 우리 다음에 놀면 안 될까? 너무 미안해. 연락할게! 나중에 보자!”
 “오, 오빠! 명백 오빠!”
 나는 매달리는 이영이를 뿌리치고 기차역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분명 기찻길 건널목이었다.
 어? 어디 갔지? 젠장, 저기 있다!

 그녀는 철로 한가운데에 멈춰 섰다. 세상에 맙소사. 성난 기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어이! 기차 와!”
 내 외침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야! 뭐 하는 거야! 기차 온다고!”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두 팔을 벌렸다.
 “미친, 그게 무슨 짓이야! 무슨 영화 찍을 일 있어?”
 나는 일촉즉발, 절체절명의 순간, 몸을 날려 그녀를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열차는 뒤엉켜 쓰러진 우리 둘 뒤로 소음을 내며 달리고 있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어딘가 모르게 나른한 그녀의 표정은 심지어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저 같은 건 살아선 안돼요……. 죽어야 돼요.”

 우린 기찻길 옆 땅바닥에 주저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그녀의 어깨를 덮어 주었다.
 “저요, 담임 선생님 애를 임신했어요. 처음에는 놀라 어쩔 줄 몰랐지만 선생님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잠깐이나마 아이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실을 알렸는데, 선생님은 진실을 털어놓았어요. 선생님은 유부남이었어요. 학교에 소문나면 안 된다고 그렇게 강조해 왔던 것도 결국 부인 몰래 만나기 위한 거였나 봐요.”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요! 난 이제 어떡하면 되는 건데? 응?’
 소녀는 몸부림을 치며 선생님의 가슴을 세차게 때렸다. 선생님은 미간을 찌푸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한데 우리 그 아기, 지우면 안 될까?’
 그녀는 고통스럽게 말을 이어 나갔다.
 “전 결국 선생님 손에 이끌려 병원으로 가 낙태를 했어요…….”
 그녀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담배를 꼬나물었다. 나는 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일진이구나.”
 그녀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우는 일진이구나.”
 “아니, 솔직히 선생님이란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생님이잖아요. 첫인상도 지적이고, 또래 남자애들처럼 나대지 않고, 막 그랬는데…….”

 나는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교사도 인간이다. 선생? 직업? 그딴 거 아무 상관없어. 아마 그 선생이란 작자는 인간 중에서도 극도로 못돼 먹은 인간인 거 같은데. 네가 임신한 뒤로부턴 네가 없어지길 바랐을 걸? 그래야 학교에, 교육부에 안 들키고, 언론에도 안 나오고, 부인한테도 안 걸리고……. 그러니까 내 말은, 혹시라도 돌아오지 않을까, 어리석은 기대 따윈 하지 말란 거야.”
 “네……. 근데 저 이미 경황없이, 바보 같이 그 사람 손에 이끌려 해서는 안 되는 더러운 짓을 했어요. 앞으로 저 같은 걸 받아 줄 사람은 없겠죠…….”
 나는 양손으로 그녀의 손을 움켜쥐었다.
 “장담하는데 머지않아 진짜 사랑이 찾아올 거야. 지금은 죽어도, 절대로 안 올 거 같지? 그저 스스로가 한심하고 추악하게만 느껴지지? 기다려. 분명히 와. 원래 사랑은 예기치 못한 거야. 예기치 못하게, 예상 밖으로, 의외로,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는 거라고. 다만 한 가지. 기다렸다 문을 열어 줄 수 있어야 해. 마음의 문을 활짝! 그러려면 그때까지 네가 활짝 웃으며 버텨 낼 수 있어야 해.”
 그녀는 서러웠던 감정들을 마구 뿜어내기 시작했다. 경적 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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