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의 점프

 빠앙! 엄청난 속도로 지하철이 눈앞을 지나갔다. 보라와 나는 술에 취한 채 나란히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뭐? 진짜? 알았어. 내가 내일 당장 대주랑 병원으로 갈게! 아, 안정을 취해야 되니까 나중에 천천히 오라고? 알았어. 그러지 뭐.”
 나는 전화를 끊고 보라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보라야,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던 친구 있잖아.”
 “호태? 맞나? 중태에 빠졌다던 그 친구.”
 “오잉, 이름까지 기억하는구나. 그놈이 드디어 의식을 되찾았대!”
 “잘됐다. 매일 그렇게 걱정하더니.”
 “그러게. 어서 완쾌해야 할 텐데. 이제 병실도 일반 병실로 옮긴대!”
 “명백이 너 정말 그 친구를 아끼는구나?”
 “그럴 수밖에. 제일 오래된 친구야.”
 “부럽다! 이렇게 아껴 주는 친구도 있고.”
 “보라, 넌 오래된 친구 없어?”
 “없어……. 도중에 다 연락이 끊겨 버렸어. 내가 의도적으로 끊은 것도 있고.”
 “그렇구나. 외롭지 않아?”
 “외롭지.”
 “그럼 얼른 나랑…….”
 “닥쳐! 시끄러워…….”

 그 순간 우리 사이로 정장 차림의 한 청년이 지나갔다. 어라? 이 익숙한 느낌은? 나는 본능적으로 불길한 정서를 포착할 수 있었다. 에구구, 그놈의 그림자. 이젠 너무 빤하잖아.
 “저기, 있지. 보라야, 미안한데 너 먼저 가. 난 저 인간 좀 처리하고 갈게.”
 보라는 찡긋 윙크를 했다.
 “우리 명백이 멋있다.”
 보라에게 거의 처음 듣는 칭찬인 거 같았다. 기분이 좋았다.

 ‘무슨 아버지 양복 꺼내 입었니?’
 녀석은 유난히 큰 사이즈의 정장을 입고 괴로운 얼굴을 한 채 플랫폼을 서성이고 있었다. 네 번째인가 다섯 번째인가, 지하철이 들어왔다. 녀석은 가느다란 실눈을 뜨더니 들어오는 열차 앞으로 성큼 뛰어내렸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요놈아!
 나는 뒤에서 녀석을 덮쳤다. 사람들은 일제히 탄성을 내질렀다.

 나는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역 근처 주점으로 들어섰다. 아까 보라와 한잔 걸친 그곳이었다.
 “어서 오세요. 어? 또 오셨네요? 뭐 두고 가셨어요?”
 “아뇨. 그게 사정이 좀 있어서……. 다른 사람이랑 2차 왔어요.”
 젠장! 왠지 쪽팔리잖아!
 우린 맥주잔을 부딪쳤다. 벌컥벌컥. 한 잔을 쫙 들이켰음에도 녀석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 망령 같은 표정을 한 녀석. 녀석은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요, 아직 좀 정신이 없긴 하지만. 아무튼 이렇게 친구랑 놀아 보는 거 진짜 오랜만이에요. 아니, 친구처럼…….”
 “자식! 친구지 뭐. 오늘부터 친구 먹자. 그나저나 죽지 마, 인마.”
 “왜…….”
 “내 친구는 얼마 전에 교통사고로 진짜 죽을 뻔 했어. 이제 겨우 깨어나 회복 중에 있다고. 삶에 대한 간절함이 얼마나 절박한지 알기나 해?”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내 알 바는 아니잖아……. 상황이 다른 거니까.”
 우린 거나하게 취한 채 주점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서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 나는 아까 두고 가려고 했던 애마에 시동을 걸었다.
 “야, 타!”
 “잠깐만, 너 이거 음주음전 아냐?”
 “지금 그딴 걸 걱정하다니……. 좀 전까지만 해도 죽으려던 놈 맞아?”
 “안 죽고 애매하게 다치면 어떡해……”
 “걱정 마라. 내가 확실히 처리해 주마! 아니, 시끄럽고 얼른 타!”

 부릉. 나는 내 어깨를 꽉 붙잡고 있던 녀석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야, 소리 질러! 욕해! 마음껏!”
 “무슨 소리야, 갑자기 어떻게 욕을 해!”
 “아냐, 할 수 있어. 해 봐!”
 “됐어. 뭔 말인지 알았으니까 이제 그냥 내려 줘.”
 “욕해!”
 “됐어. 나 괜찮아.”
 “닥치고 빨리 욕해, 겁쟁이 쪼다 병신 새끼야!”
 “씨발! 그래, 한다! 이 부장 이 개새끼야! 네가 파일 뭉치로 정수리 맞는 기분을 알아? 펜대로 싸대기 맞는 기분을 아냐고! 매일 밤, 내가 인간 취급도 못 받아 가면서, 부속품 취급을 당하면서, 쌍욕 얻어먹어 가면서 번 돈……. 얼마 되지도 않는 그 돈 세며 잠도 못 자는 거 아냐고. 일하기 싫으면 당장 관두라고? 대신 일할 사람 널렸다고? 네가 그렇게 다른 사람 인격을 모독하고도 멀쩡히 살 수 있을 거 같으냐! 그거 다 돌아온다, 이 또라이 새끼야! 박 팀장, 너도 그래, 새끼야! 사실 네가 더 야비해. 직속이면 좀 지켜 줄 것이지, 부장 앞에서 아부나 떨고 앉아 있냐? 좆도 씨부랄, 다 뒈져라, 뒈져!”
 나는 호숫가에 바이크를 세웠다.
 “이제 속이 좀 후련해?”
 “그래, 후련하다, 후련해.”
 “야! 무조건 죽지 말라고, 앞으로 영영 역에서 뛰어내리지 말라고 안 할게. 대신 그 죽음을 조금만 뒤로 미뤄 보자.”
 녀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살을 조금만 뒤로 미뤄 보자고. 아니, 아예 날짜를 정하자. 다음 주 어때? 다음 주 토요일에 뛰어내리기! 토요일의 점프!”

 다음 주 토요일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녀석에게 느닷없이 전화를 걸었다. 녀석은 엄청나게 졸린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살아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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