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은 편파적인가

김어준은 편파적인가. 맞다. 편파적이다. 그러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특수 관계인의 주장을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싣는 행위 자체가 그의 무죄를 외치는 일로 다뤄져선 안 되며, 피해자들이 존재하는 사안에 관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가 아니라 어떻게든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안의 본질을 호도할 수 없도록 피해자 중심주의로 가되 전복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을 불확실한 세계 속에 보험으로 남겨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확신을 가지고 시작하는 사람은 회의로 끝나고 기꺼이 의심하면서 시작하는 사람은 확신을 가지고 끝내게 된다고 말했다.

음모론이 모종의 비리를 밝혀내고 수사망에 그를 포함시키는 기제로 기능하게 된다면, 해당 음모론자들은 득세하게 될 거고 상위 미디어로 진출하게 될 거다. 반면 그다지 효용 가치가 없는 주장을 일삼는 자들은 자연스레 도태될 거다. 그럼 음모론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음모론은 항시 존재할 거다. 민주주의 체제가 존속하는 한 순기능과 역기능 사이에서 공적 언어의 힘으로 꾸준히 존재할 거다. 그렇다면 이 근절할 수 없는 공적 언어의 힘을 쉬쉬하기 보단 공영 매체에서 허용하되 견제하는 게, 제재보단 자유를 택하는 게 민주적이다.

이와 관련해 톰 로건은 음모론이 미국에 이로울 수 있는 점에 관해 아폴로 11호, JFK, 9/11 테러 등의 역사적 사례들을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골자는 음모론이 공무상의 불법 행위를 잡아내기도 하고 역사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도 하며, 현안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견고하게 만들어 내고 있단 거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음모론이 생산적인 결과를 낳든 그렇지 못 하든 사회적으로 필요하다는 데에 있다.

실제로 시민 사회가 공공의 경험을 판단의 축이란 사회적 자산으로 축적해 나가면서, 정론에 대한 환상을 깨뜨려 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구심점이 될 만한 일의를 성실히 믿고 싶어 하는 지체 현상이 존재하고, 그 결과 유사 정론 혹은 꼭 정론이 되어 줄 것만 같은 반짝반짝한 무언가가 배태한 배타적 냉소가 탄생했다.

결국 어떻게 민영 방송 SBS에서 편향적인 방송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해당 방송과 유사한 양태를 가진 프로그램들이 공영 방송 MBC, KBS에서도 방영되어야 한다는 거다. 공영 방송의 정의는 신기루에 가까운 정론의 환상을 부활시키는 단체가 아니라, 이윤 추구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지 않고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송 기관이다. 공공의 이익에 음모론이 참신한 관점과 폭로로 이바지하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김어준을 몰아낼 게 아니라 상대 진영을 옹호하는 자들 사이에서 김어준을 만들어 내면 되는 거다. 갑론을박, 용호상박, 피처링 지상파. 이 얼마나 다채로운 비판 의식이 살아 숨 쉬는 교양 있는 명랑 사회, 균형 잡힌 사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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