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사장에게 땡땡이, 손님 있는 상태에서 만화 보기, 먹을 거 몰래 꺼내 먹기 등의 만행을 들켜 편의점에서 잘리고 말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 아버지의 죽음 이후 일어난 모든 일들을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눈가가 촉촉해졌다. 젠장. 역시 직업이 없으면 불안하다!
 노트북을 열고 닥치는 대로 이곳저곳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국제전자센터 내 게임 숍 알바. 통근 거리가 꽤 있었지만 지하철로 한 번에 오갈 수 있었다.
 여긴 항상 비슷한 부류의 인간들만 오는군. 다들 눈이 풀려 있어. 그리고 왜 죄다 남자냐!
 한차례 손님이 우르르 몰려왔다 빠졌다.
 다 나갔나? 으악, 한 놈이 남아 있다! 또 저 녀석이야.
 매장에는 아직 한 명이 남아 있었다.
 저 녀석 상태가 제일 심각해. 매일 저녁 7시만 되면 이곳에 나타난다고! 무슨 도 닦니? 시간은 징그럽게도 딱딱 맞춰요.
 녀석은 작고 통통한 체구에 은색 안경을 쓰고 있었고, 곰보, 주근깨, 여드름투성이였다.
 음. 정말 못생겼군. 외모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건 살짝 너무 하달까? 게다가 티셔츠는 또 스타워즈 다스 베이더야.

 “명백 오빠!”
 헉. 여긴 또 어떻게 알고!
 이영이가 등장했다.
 “대박! 오빠, 여기서 일해?”
 “웬일이야? 너 나 미행했지?”
 “무슨 소리야. 나 여기 피규어 사러 엄청 자주 와. 가방에 달려 있는 것도 다 여기서 산 거야. 치사해. 왜 여기서 일한다고 말 안 해줬어!”
 “미안. 아무튼 조용히 보다 가라. 나 이번에도 알바 잘리면 안 돼.”
 이영이는 갑자기 애교를 부리며 와락 안겼다.
 “싫어! 나랑 놀자! 오빠 심심할 테니까 내가 옆에서 같이 수다 떨어 줄게.”
 “아냐, 이영아, 나 하나도 안 심심해. 태어나서 오늘처럼 안 심심한 적은 처음이야.”
 나는 이영이를 부드럽게 떨쳐 내며 앓는 소리를 했다.
 “오빠, 내가 그렇게 싫어?”
 “아냐, 내가 널 왜 싫어해. 좋아하지. 어리고 귀엽고 사랑스럽…….”
 “솔직히 말해 봐. 누구 좋아하는 사람 있지?”
 “…….”
 “흥, 나 몰래 누구 숨겨 놓은 거 다 알아.”
 “저기, 웬만하면 남 아르바이트하는 데 와서 그런 말 하지 마라. 그리고 숨겨 놓다니. 자동으로 숨겨졌을 뿐이야.”
 “흥, 누가 있긴 있나 보네. 그렇다고 내가 포기할 줄 알고?”
 뜨헉. 이영이는 느닷없이 내 볼에 뽀뽀를 했다.
 “야…….”
 가슴이 마구마구 콩닥거렸다. 이영이도 부끄러웠는지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오빠, 근데 저 사람 봐봐. 완전 오타쿠 같지? 뚱보에 겁나 못생겼어. 그리고 아까부터 뭘 보고 있는 줄 알아? 여자 아이돌 섹시 화보집. 음흉해!”
 나는 이영이가 가리키는 쪽을 봤다.
 저 녀석, 아직도 남아 있군. 그런데……. 으악! 그림자가 없잖아?

 퇴근 후. 나는 겨우겨우 이영이를 먼저 보내고 녀석을 뒤따라갔다. 녀석은 예상대로 옥상으로 올라가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안 봐도 비디오였다.
 “그만둬!”
 녀석은 눈물로 얼룩져 한층 더 못생겨진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우리는 옥상 난간에 기대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무도 절 좋아해 주지 않았어요. 오랫동안 좋아하던 여자애가 있었는데 역시 저 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더군요. 고민 끝에 용기 내 고백을 했는데 놀림 받듯이 차였어요. 그 뒤로 점점 더 사람 만나는 게 두려워졌고 게임, 애니메이션, 피규어 같은 취미에 빠져들었죠.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인터넷에 악플을 남겨요. 소심하지만 저를 미워하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 대한 나름의 복수죠. 아무튼 그러다 바로 이 게임 숍에서 한 여자애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는 난생 처음으로 제게 먼저 말을 걸어 줬어요.”
 ‘어? 이 게임 좋아하세요?’
 ‘앗, 네……. 왜요?’
 ‘저도 이거 엄청 좋아하는데! 이거 좋아하시는 분 처음 봐요!’

 “우린 게임 때문에 급속도로 친해졌어요. 스타워즈에 나오는 요다를 닮은 애여서 저는 그녀를 요다라고 불렀죠. 요다는 그 별명을 싫어했지만.”
 “오타쿠다운 별명이네요.”
 “말하기 부끄러운데 그녀는 저를 테디라고 불러 줬어요. 제 외모를 최대한 귀엽게 보면 테디 베어가 나오나 봐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 기분은 황홀했죠. 우린 결국 사귀게 되었고 사랑이 깊어지던 어느 날, 우리 집에서 함께 첫날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요다……. 너 처음 아냐?’
 “요다는 조심스럽게 과거를 털어놓기 시작했어요.”
 ‘테디……. 그땐 그 사람을 사랑했었고 네 존재는 알지도 못했어. 그런데도 과거가 중요해? 왜 그렇게 과거에 집착해. 현재가 중요한 거잖아. 지금 우리 마음이 가장 중요한 거잖아.’
 ‘난 너한테 모든 게 처음이야. 그래. 난 못생기고 잘하는 것도 없어. 인기도 없고 심지어 학교 다닐 때 왕따 당한 적도 있어. 그래서 경험은커녕 경험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어. 알아.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머리로는 다 이해가 되는데 가슴으로 이해가 안 돼. 그래서 널 만나면 항상 머릿속에 그 생각뿐이야. 네가 사랑했다던 그 남자한테 질투가 나! 마음 같아선 찾아가서 해코지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야! 미안해. 우리 헤어지자…….‘

 “요다는 구슬프게 울며 저를 떠나갔어요……. 잃고 나서야 깨달았죠. 제가 잘못했다는 걸, 제게 과분했다는 걸…….”
 “그렇게 직접 말해 보지 그랬어요?”
 테디는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화를 했는데 처음엔 안 받다가 계속 하니까 나중에는 받더군요. 그래서 한 번만 더 만회할 기회를 주면 안 되겠냐고 빌었어요. 그랬더니……. 새 남자 친구가 생겼대요. 다신 연락하지 말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쾅거리더라고요. 그 뒤로 혹시라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처음 만난 시간에 맞춰 여기 오고 있어요. 오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와 보고 오늘도 만날 수 없다면…….”
 그런 마음가짐으로 와서 하는 게 여자 아이돌 섹시 화보 훔쳐보기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쓴 미소를 지으며 테디에게 말했다.
 “내 생각에는 굳이 네가 만회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아.”
 “왜요? 제가 상처를 줬는걸요?”
 “요다는 이미 치유 중이야. 새로운 사랑을 만나 이전 사랑을 열심히 치유하고 있다고. 만회한답시고 자꾸 연락하면 상처를 떠올리게 될 뿐이야. 그러니…….”
 “그러니?”
 “이제 그만 그녀를 놔줘.”
 “싫어요…….”
 “놔주는 게 좋을 거 같아.”
 “싫어…….”
 “놔줘.”
 “…….”
 테디는 침묵하는가 싶더니 이내 빨갛게 달아올랐다.
 “싫어! 싫다고, 새끼야!”
 녀석은 주먹으로 내 가슴을 세차게 두드리며 펑펑 울기 시작했다.
 “싫어요! 싫다고요! 이번 일로 뼈저리게 깨달았으니까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제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해요. 그런데 그녀는 유일하게 날, 이렇게 보잘 것 없는 날 사랑해 준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 말에 내 가슴도 미어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못생기고 기름진 녀석을 껴안아 버렸다.
 “지금 상처를 치유해야 할 사람은 너야, 너. 상처를 받은 건, 치유조차 못하고 있는 건 그녀가 아니라 너라고, 너……. 인마. 누군가에게 사랑으로 상처를 줬다는 사실을 괴로워하되 너무 괴로워하진 마. 상처를 주면서 상처를 받았으니까. 진정해. 너는 널 미워하는 세상을 혐오하고 세상으로부터 미움 받는 네 자신이 싫기 때문에 미움을 전가했던 거뿐이야.”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부둥켜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 손발 오그라드는 사건을 계기로 테디는 더 이상 게임 숍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가끔 문자로 소식을 전해 왔는데, 시청에서 운영하는 심리상담센터에 다닌다고 했다. 거기가 비용이 저렴하다나 뭐라나. 하여튼 게임 살 돈 말고는 무지하게 아껴요. 그러던 어느 날, 녀석에게로부터 사진 한 통이 도착했다. 셀카? 해맑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못생겼군. 오잉? 근데 옆에 이 여자는 누구지? 혹시 여, 여자 친구? 이놈아, 여친은 나도 없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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