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흩날려

 우리는 식당 밖으로 나설 채비를 했다.
 “보라야, 준비됐어?”
 “응. 가자. 잠깐만, 주방에 불 안 껐다. 그래서 오늘 어디 갈 건데?”
 “어디 가고 싶은데?”
 “어쭈, 준비도 안 해놨단 말이지! 그럼 그냥 술이나 마시러 가자.”
 또 술이냐! 우리는 바이크를 식당 앞에 내버려 둔 채 근처 술집으로 향했다.
 보라는 술을 마시면 평소보다 더 털털해지곤 했다. 매력적이었다.
 “취하니까 너무 좋은 거 있지. 명백아, 나 있잖아. 취했을 때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그렇게 말하니까 무슨 알코올 중독자 같잖아.”
 보라는 머뭇거렸다.
 “사실 말 안 한 게 있는데, 나 알코올 중독자 맞아.”
 나는 태연한 척 연기를 했다.
 “그래? 치료 모임 같은 데 나가 보는 건 어때?”
 “멍청아, 그런 거 소용없어. 징그러운 늙다리들도 많고. 암튼 별로야.”

 우리는 거뜬히 소주 한 병을 비워 냈다.
 “나 조만간 알바 잘릴지도 몰라. 사장이 한 번만 더 교대 없이 자리 비우면 당장 해고해 버린대.”
 “흥, 누가 땡땡이치고 여자랑 술 마시러 가래?”
 “오잉? 그걸 그렇게 해석하면 어떡해! 난 도와준 거라고. 억울해!”
 보라는 토라진 얼굴로 톡 쏘았다.
 “됐어. 어차피 나랑은 상관없는 일인 걸.”
 “왜 상관이 없어. 우리 서로 그렇고 그런 사이잖아?”
 “야! 뭔 소리야. 네가 날 좋아하는 거겠지.”
 “애매하니까 곧 불타오르는 사랑을 할 사이쯤으로 해두는 건 어떨까?”
 “닥쳐. 자꾸 그러면 나 집에 간다?”
 “미안……. 너 가면 나 혼자 울면서 집에 가야 돼.”
 “그리고……. 너 좋다고 따라다니는 여고생 있다며.”
 “아, 이영이? 몰라. 내가 좋대. 글쎄, 걔가 얼마나 도발적이냐면…….”
 “시끄러워. 이 소아 성애증 변태 놈아!”

 우리는 벌써 두 병째 비우고 있었다.
 “아무튼 자살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새로운 신호로 그림자가 등장했어.”
 “그림자?”
 “응, 아까 말한 그 여대생도 그림자가 없었거든. 그래서 따라간 거야.”
 “그럼 그동안 봐 온 사람들도 아니, 나한테도 그림자가 없었어?”
 “그게 잘 기억이 안 나. 그땐 그림자에 전혀 신경을 안 썼거든.”

 다음 날. 나는 평소처럼 편의점으로 출근을 했다. 전날 과음한 탓일까. 무진장 속이 쓰렸다. 
 안 되겠다. 냉장고에서 컨디션을 몰래 한 병 꺼내 마셔야겠다. 설마 이것까지 일일이 체크하지는 않겠지.
 나는 냉장고에서 몰래 숙취 해소 음료를 꺼내 마셨다. 아, 이제 좀 살 거 같네.
 그때였다.
 “에이 씨, 이놈의 벚꽃! 하이힐에 벚꽃 찌꺼기 다 꼈네! 아저씨, 여기 숙취 해소 음료 같은 거 없어요? 편의점이 뭐가 이렇게 복잡해! 뭘 찾을 수가 없네.”
 뭬? 아저씨라고! 참자. 손바닥에 참을 인 자를 삼백 번 정도 그리자. 시종일관 평온했던 편의점은 그녀의 등장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났다.
 “컨디션이요? 저기 뒤쪽에 있어요.”
 “어디요? 없던데! 머리 아파 죽겠으니까 빨리 좀 갖다 줘요.”
 “네, 금방 가져다 드릴 게요.”
 나는 티 안 나게 씩씩거리며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내 왔다.

 퇴근 후, 나는 메슥거리는 속을 달래기 위해 무작정 거리를 걸었다. 발걸음은 어느덧 인근 번화가로 접어들었고, 그곳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불쑥 전단지를 건네주었다.
 “오빠, 놀다 가. 우리 가게에 예쁜 애들 많아.”
 “어? 당신은 아까 그 미친…….”
 그녀는 분명 편의점에서 깽판을 치던 여자였다. 그녀는 나를 향해 잠시 어색한 미소를 짓더니 곧장 옆에 있던 샐러리맨에게 옮겨 갔다.
 흥, 뭐야. 술집 여자였잖아! 나한테 아저씨라고 했겠다! 가만, 그림자가 없잖아!
 나는 근처 카페에 숨어 있다 그녀를 미행해 보기로 했다. 내가 생각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는 룸살롱 입구에서 부장급쯤 되어 보이는 늙수그레한 샐러리맨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아유, 귀여운 것. 이리 와, 2차 가자고! 나 안 취했다니까 그러네.”
 “아냐, 오빠. 오늘 너무 많이 취했어. 다음에 내가 화끈하게 해줄게. 오늘은 들어가서 푹 주무세요. 알았지?”
 그녀는 모든 게 능숙해 보였다.

 그녀는 홀로 밤길을 걸으며 무수한 택시를 지나쳤다. 그리고 이내 갓길을 따라 고가 도로를 오르기 시작했다.
 저길 걸어서 올라가다니 확실히 이상하다. 설마 집까지 걸어가려는 건가? 아니, 그보다 이 높은 곳을 하이힐 신고 잘도 오르네!
 나는 헉헉거리며 그녀를 뒤따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난간 위에 올라섰다. 젠장. 나는 살금살금 다가가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
 “씨발, 누구야? 이거 놔! 이 씨발 새끼야!”
 그녀의 거침없는 욕설에 나도 덩달아 소리를 쳤다.
 “대체 뭐가 그렇게 힘든 건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널 못살게 구는 건데? 내려오라고 강요하지 않을 테니까 이대로 말해 봐. 꽉 붙잡고 있을게.”
 “놓으라고! 씨발! 그렇게 알고 싶어? 이 좆같은 세상이 힘들어 죽겠다! 됐냐? 됐어?”
 그녀는 성난 괴물처럼 발악을 했다.
 “그래, 좋아. 하고 싶은 말 다 했냐? 그럼 나도 하고 싶은 말 다 할 테니까 잘 들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힘들고 괴로워서 도저히, 도무지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때는, 미쳐 버릴 것만 같을 때는 그딴 전단지에 박힌 이상한 사진 말고 사진첩에 있는 사진을 꺼내 보란 말이다! 네가 아직 순수하고 때 묻지 않았을 때, 그때의 모습을 꺼내 보란 말이다! 사진첩은 그러라고 있는 거라고! 그걸 위해 미리미리 찍어 두는 거라고!”
 나는 순간적으로 그녀의 몸에 힘이 풀리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이때다! 그녀는 맥없이 난간 안쪽으로 쓰러졌다. 실눈을 뜬 그녀의 입에서 유약한 욕설이 흘러나왔다.
 “씨발, 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 해. 네가 내 삶을 알기나 해? 알긴 뭘 알아. 내 카드 빚, 도박 빚이 얼만지 알기나 해? 매일 겁박당하면서 쇠사슬에 매여 사는 삶을 네가 알기나 하냐고. 늙은이들 허리 감싸 쥐고 룸살롱 밖을 나서는 삶을 네가 알기나 하냐고. 어차피 이 따위 인생은 이미 살아있는 거도 아냐…….”
 그녀는 흐느껴 울었다.

 나는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녀의 집은 편의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집 앞에는 커다란 벚나무가 지붕 위로 훌쩍 자라나 있었다. 내가 떠난 뒤, 그녀는 서랍장에 있던 사진첩을 꺼내 한 장씩 넘겨 보기 시작했다. 사진 한 장이 눈에 띄었다. 유원지에서 엄마와 단둘이 찍은 사진이었다.
 ‘자, 찍을게. 하나, 둘, 셋, 치즈!’
 ‘치즈!’
 ‘엄마, 나 숫자 열까지 셀 수 있다. 봐봐!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우와, 유치원에서 배웠어?’
 ‘응, 영어로도 할 수 있어. 원, 투, 쓰리, 포, 파이브, 식스, 세븐, 에잇, 나인, 텐!’
 ‘아유, 선생님이 영어로도 가르쳐 줬어? 잘한다, 우리 아가!’
 사진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그녀는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사진과 꼭 같은 벚꽃이 흩날렸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지방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자? 나야. 응, 별일 없지. 그럼. 아무 일도 없어. 엄마, 있잖아. 지금 밖에 벚꽃이 흩날려. 기억나? 어릴 때 자주 가던 그 유원지 있잖아. 지금 꼭 거기처럼 벚꽃이 흩날려. 응, 너무 예뻐. 너무 예뻐서 전화한 거야. 진짜 그거 말하려고 전화한 거야. 아이고, 우리 엄마 또 쓸데없는 걱정한다. 왜 우냐고? 안 울어. 울긴 누가 운다고 그래. 알았어. 다음에 또 전화할게. 얼른 다시 자.”
 그날 밤, 벚나무 아래 지은 집은 온통 새하얀 벚꽃으로 뒤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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