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그림자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근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드디어 프리타로서의 삶이 시작되는구나. 굶어 죽지 않으려면 이럴 수밖에 없겠지.
 “9800원입니다. 할인이나 적립 카드 있으세요?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삑삑. 간단한 일이었지만 무척이나 심심한 일이었다. 때로는 너무 심심해서 좀이 쑤실 정도였다. 급기야 나는 손님이 없을 때 계산대 밑에서 몰래 만화책을 봤다. 가끔은 손님이 있을 때도 봤다. 위에 감시 카메라가 버젓이 달려 있었지만 강도가 들지 않는 이상 사장이 그걸 돌려 보는 일 따윈 없을 게 분명했다.
 오늘도 또 지각이군. 야간 조로 교대하는 여동생 녀석은 매일같이 지각을 했다. 나는 서글픈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저렇게 완연한 봄 날씨에 나가 놀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유리관 안에 갇혀 있는 신세라니. 이거 왠지 기분이 싱숭생숭한 게 오늘도 또 한바탕 난리가 날 거 같은데. 그만 좀 해라. 나는 아직 그런 업보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단 말이다.

 “저기…….”
 나는 다소 짜증이 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또 연락도 없이 20분이나 늦었잖아!”
 오잉? 누구세요?
 눈앞에는 한눈에 봐도 수상한 여대생이 서 있었다. 그녀는 뿔테 안경에 장밋빛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고, 남동생에게 급히 빌려온 것만 같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뭐 찾으세요?”
 “혹시……. 생리대 없나요? 진열대에 있는 게 하나도 없어서.”
 “아……. 오늘 딱 떨어졌어요. 내일 새로 들어오긴 하는데.”
 그녀는 유독 자신감 없는 말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재고도 없나요? 다른 편의점이나 마트에 가려면 또 멀리 걸어가야 해서.”
 “죄송합니다. 진열됐던 게 전부예요.”
 나는 왠지 모르게 애처로운 마음이 들어 그녀와 눈을 마주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녀는 애써 내 눈길을 피하고 있었다.

 나는 편의점을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처량한 발걸음. 그녀는 먼발치 가로등 밑까지 나아가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헉! 저게 뭐지? 그림자가 없다!
 등골이 오싹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봐도 그녀에게는 그림자가 없었다. 헐! 귀신인가! 내가 또 귀신에 홀렸나? 아냐. 이제 알겠다. 어제 본 영화 탓일 거야. 순간 어제 본 공포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처녀 귀신이 그녀를 죽인 남자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 놓던 바로 그 장면.
 젠장.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림자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녀가 곧 자살하려 한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 오늘의 상대는 너로구나!
 나는 그녀를 향해 숨 가쁘게 내달렸다.
 “죽지 마요! 죽지 마세요!”
 “네? 뭐라는 거예요!”
 “죽지 말라고요! 그거 제가 대신 마트에 가서 사다 드릴 게요!”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떨궜다. 잠시 고민하는 듯 했다.
 “시끄러워요. 아직 안 죽어요……. 생리 끝나면 죽을 거예요.”

 “계란말이 나왔습니다. 뜨겁습니다.”
 생각보다 가지런하게 정렬된 계란말이가 식탁 위에 놓여졌다. 김이 모락모락 났다. 우린 근처 포장마차에 들어앉아 벌써 여러 잔째 잔을 주고받고 있었다.
 “맞다. 근데 술 마셔도 돼요?”
 “벌써 몇 달도 더 지났는데요, 뭘. 요즘엔 거의 혼자 매일 마셔요.”
 나는 피식 웃었다.
 “물어봐도 될지는 모르겠는데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요. 아까 생리 기간에 대해서 얘기하셨는데, 사람이 자살을 한다는 건 지금 당장 못 견뎌서 죽는 거 아닌가요? 자살도 계획할 수가 있나요? 막 다이어리 같은 데에다 일정 체크해 가면서?”
 그녀는 작게나마 소리 내어 웃었다.
 “글쎄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 같은 경우엔 죽은 다음을 많이 생각해 보게 되는 편인 거 같아요. 경찰이나 이웃들이 제 시신을 발견했을 때 그 부분에 피가 흥건히 묻어 있으면 이미 죽은 뒤지만 부끄러울 거 같아서, 남은 주변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부끄럽게 할 거 같아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다르르. 갑자기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명백아, 인마! 너 교대도 안 했는데 자리를 비우면 어떡해! 걔가 자다가 지금 일어났다는데 넌 가게도 안 보고 대체 어딜 가 자빠져 있는 거야?”
 가만, 이게 무슨 소리지? 맞다. 편의점!
 “네? 뭐라고요? 안 들려요! 여보세요?” 나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나 나올 법한 연기를 하며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 의사 새끼는 진짜 돈만 밝히는 놈이었어요. 쌍꺼풀, 앞트임, 뒤트임 수술 전에는 온갖 달콤한 말로 알랑거리더니 수술 후에 태도가 싹 바뀌더라고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재수술하면 100% 나아질 수 있다, 다만 수술 난이도가 올라 수술비는 첫 수술보다 좀 더 비싸다, 하면서 절 계속 꼬드겼죠. 그땐 정말 다급했어요. 결국 한 번만 더 믿어 보자는 심정으로 그 인간한테 재수술까지 받았죠. 결과는 보시다시피 최악이에요. 사람이 안하무인이 되는 건 순식간이더군요. 두 번째 수술이 망했을 때는 면전에 대고 사람마다 운이라는 게 있다, 네 팔자다, 나보고 어쩌라고, 라는 말까지 하더군요. 그리고 다음 환자를 봐야 한다며 나가라고 고함을 쳤어요. 저는 억지로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면서 성형외과 건물 계단을 뛰어내려왔고, 그 뒤로 계속 폐인처럼 지내고 있어요. 다른 병원에도 상담을 해봤지만 지금은 흉이 너무 심해 재수술이 안 되고 몇 달 뒤에도 근육이나 지방 상태 같은 걸 보고 판단해야 되는데 그마저도 힘들 거라고 하더군요. 시간을 되돌릴 순 없지만 차라리 맨 처음 수술을 망쳤을 때 멈출 걸 그랬어요. 그래, 나 성형했다, 요즘 다들 하잖아, 뭐 어때, 라고 당당하게 말하면서 살 걸 그랬어요.”
 “그럼 결국 성형 수술 부작용 때문에 죽으려고 했던 거네요?”
 “말하자면 그렇죠. 하지만 제일 화가 나는 건 그딴 새끼에게 두 번이나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 그 자체예요. 참, 제가 뭘 믿고 그렇게 무모하게 행동했는지……. 물론 제 얼굴이 못나져서 주위 연락 다 끊고 대학 휴학하고 사는 거도 괴롭지만, 그놈에 대한 원한이나 원망, 수치스러움 같은 게 더 커요. 할 수만 있다면 그놈을 메스로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다니까요.”

 우리는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요.”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마트로 달려가 생리대 한 박스를 머리에 이고 돌아왔다.
 “자요. 이거 다 쓸 때까지 죽지 마요. 절대로 죽지 마요.”
 “와, 정말 창피하게 왜 이러세요……. 길거리에서 사람들 다 보는데…….”
 그녀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과장하지 마세요.”
 “네?”
 “예뻐요! 지금도 충분히 예쁘다고요! 제가 함부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겠지만 본인 스스로가 남들이 보고 느끼는 거 이상으로 안 좋게 생각하고 있는 거 같아요. 모르는 거잖아요. 시간이 지나면 수술 부위가 지금보다 더 잘 자리 잡을 수도 있는 거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여기에 있는데, 바로 옆에 있는데 못생겼다고 생각하면서 죽어 버리면 그건 너무 하잖아요.”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어둡고 침침하게 지내던 습관을 뒤로 한 채 모든 전등에 불을 켰다. 그리고 한동안 보지 않던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예뻐요! 지금도 충분히 예쁘다고요!’
 어느 틈엔가 그녀의 발밑엔 짙은 그림자가 너풀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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