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살고 싶습니다

 다행히 ‘새벽’에는 아직도 불이 켜져 있었다.
 “보라야.”
 나는 슬그머니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어? 명백아, 연락도 없이 웬일이야?”
 “무슨 소리야. 연락했는데 네가 다 씹었잖아.”
 “답장했는데…….”
 “응, 했지. 이틀 뒤에.”
 “미안. 내가 원래 그런 거에 둔감하잖아.”
 보라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순간 곁에서 누군가의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또 저놈이구먼. 돈도 안 내고 먹는 놈.”
 “아이, 사장님. 그게 아니라 아무리 주려고 해도 보라가 돈을 안 받는 걸 어떡해요.”
 사장은 보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이고, 보라야, 저 녀석이 그렇게도 좋냐?”
 보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친구라서 그래요. 아시잖아요.”
 “에라, 모르겠다. 너 좋을 대로 해라. 여기서 너 좋을 대로 안 하면 누구 좋을 대로 하겠니. 난 이만 들어가 볼 테니 가게 잘 지켜라.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알지?”
 “장사 한두 번 하는 거도 아니고 잔소리 좀 그만해요.”
 보라와 사장은 익숙한 듯 아옹다옹했고,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명백 씨도 우리 재료 다 거덜 내지 말고 적당히 먹자. 응?”
 “싫어요. 다섯 공기 먹을 거예요.”

 사장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우리는 오랜만에 단둘이 가게를 보게 되었다.
 “오랜만에 늙다리 없이 우리 둘이 있으니까 너무 좋다. 그치? 보라야?”
 “좋긴 뭐가 좋아. 아무튼 뭐 먹을래? 뭐 해줄까?”
 보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찡긋거렸다.
 “당연히 연어 스테이크지!”
 “오늘은 연어가 다 떨어졌는데…….”
 “오잉? 싫어! 연어, 연어! 빨리 연어 달란 말이야!”
 “닥쳐. 그냥 주는 거 아무 거나 처먹어. 어디서 앙탈이야?”
 “네…….”
 보라는 장난스러운 말투로 면박을 줬다. 식탁에는 고등어조림이 보기 좋게 놓여졌다.
 “맛있다! 지금까지 네가 해준 게 다 맛있지만 이건 진짜 너무 맛있어. 고등어의 짠맛을 달래 주는 순한 국물 맛이 일품이랄까. 아니, 그냥 맛있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어.”
 나는 접시는 물론 국그릇, 밥그릇까지 깨끗하게 싹 비워 냈다.
 “보라야, 있잖아. 최근에 나한테 좀 혼란스러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데……. 그러니까 그게, 너도 포함해서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들을 자꾸 보게 되는 거 같아.”
 보라는 피식거렸다.
 “그래서 지금 나한테 고민 상담하는 거야?”
 “아니, 뭐 딱히 고민이라기보다는……. 내 말은 대체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나 하는 거야. 내가 뭐 잘못했나?”
 “언제부터 그런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노망, 아니, 아빠가 죽는 걸 목격한 이후부터 쭉 그래.”

 땡그랑. 식당 문을 여는 종소리가 울렸다. 해어진 정장 차림의 한 남자는 비틀거리며 아무 자리에나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의 넥타이는 풀어 헤쳐져 땀으로 찐득해져 있었다. 보라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 주문하시겠어요?”
 “저도 제가 지금 뭘 먹어야 될지 모르겠는데, 먹으면 힘 좀 나는 거 있어요?”
 “네? 어떤 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남자는 식은땀을 흘렸다.
 “사실 아무거나 다 괜찮아요.”
 모락모락. 테이블에는 전골 요리가 놓여졌다. 사내는 떨리는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었다. 뜨끈한 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이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너무 맛있어서 그만……. 눈물이 다 나오네요. 정말 죄송한데 제 얘기를 한 번만 들어 주시면 안 될까요? 진상을 부려서 죄송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 오늘 술 한 방울도 안 마셨습니다! 말짱합니다!”
 눈물 콧물이 다 냄비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보라와 나는 할 수 없이 그의 테이블로 가 이야기를 들어 주기 시작했다.

 “아내가 바람이 났어요. 처녀 시절에 그렇게 세상 물정 모르던 아내가, 대학 졸업하고 선볼 때까지만 해도 순수하고 귀여웠던 아내가 딴 남자랑 바람이 났다고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에요. 아이고, 이걸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되지? 그러니까 몇 년 전에 제가 아내 등쌀에 못 이겨 아들놈을 강남 학군에 위장 전입시켰는데요. 짐작은 했지만 생각했던 거보다 학원비가 어마어마한 거예요. 그래서 아내한테 그보다 좀 떨어지는 데에다 보내면 안 되겠냐고 했더니 글쎄, 하는 소리가 강남 엄마들은 안 그런대요. 자식 학원비랑 과외비만 해도 제 월급으로 안 된대요. 이 쥐꼬리만 한 돈 가지고 그쪽 세계에 못 낀대요. 그래서 엄마들 모임에 쪽팔려서 못 나가겠대요. 그럼 내 월급 얼만지 뻔히 알면서 학교는 왜 옮겼대요? 누군들 자식 교육 잘 안 시키고 싶겠어요? 나도 내 자식 유학 보내고 싶다고요!”
 사내의 눈은 어느덧 붉어졌다. 보라는 부엌에서 청주 한 병을 꺼내 왔다.
 “아저씨, 이거 같이 마셔요. 공짜로 드리는 거예요.”
 “아이고, 황송해서…….”
 우리는 셋이 함께 술을 마셨다.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떠들어 댔다.
 “그러다 무슨 강남 주식 모임인지 뭔지를 열심히 나가다가……. 증권사에 다니는 돈 많은 놈이랑, 지보다 어린 놈 자식이랑 붙어먹었대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뼈 빠지게 고생하면서 돈 벌어다 줬는데. 내가 핸드폰 뒤져서 물증 다 잡았어요. 아! 처음에 그걸 딱 봤을 때는 심장이 벌렁벌렁하대요. 아내가 들어오자마자 증거 들이밀면서 노발대발했더니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거예요. 오죽하면 그랬겠냐! 돈 때문에 옥죄는 삶, 애 키우느라 눈치 보는 삶, 자기도 지겹다, 이혼하자! 막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귀싸대기를 때렸어요. 그랬더니 신고하겠다고 난리치면서 친정으로 도망갔어요. 갑자기 남의 식당에 와서 이런 말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취한 김에 한번 해봅니다. 나 있잖아요. 오늘 밤에 그년 찾아가서 죽여 버릴 거예요. 그리고 바로 한강에서 뛰어내릴 거예요. 말리지 마! 나 그년 죽이고 죽을 거야!”

 나는 무겁게 입을 뗐다.
 “아저씨.”
 “응?”
 “우리 술 마셔서 그런지 엄청 더운데 밖에 나갑시다.”
 보라는 흠칫 내 표정을 살폈다. 나는 아저씨와 단둘이 바깥으로 나왔다.
 “우리 싸웁시다.”
 아저씨는 술이 확 깨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
 나는 인정사정보지 않고 다짜고짜 그 인간을 두드려 팼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저항의 몸부림을 치더니 급기야 괴성을 지르며 살려 달라고 빌었다.
 “야, 이 새끼야! 갑자기 왜 이래! 살려 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아이고, 제가 너무 취해서 할 말 못할 말…….”
 나는 구타를 멈췄다.
 “아저씨는 누구를 죽이거나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죽도록 살고 싶은 거 같은데?”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고, 나는 뒤돌아서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애는 아무런 죄가 없잖아.”
 그 말에 그의 검붉은 눈동자는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자식 얘기에, 자식 얘기가 나오자마자 그런 요상한 표정을 짓는 아저씨는 내가 볼 때 되게 좋은 아빠 같은데.”
 나는 가게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곁눈질로 창문을 들여다봤다. 보라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버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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