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사회

휘뚜루마뚜루 헤쳐 나갈 문제도 아니고 각기 다른 주체들을 일직선 상에 나열하는 것도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일이지만, 유아인이나 한서희, 일베, 메갈, 워마드 같은 키워드들이 뒤엉켜 장기간 노출된다는 건 분명 한 사회의 단면을 말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지우는 자신의 저서 <분노사회>를 통해 한국 사회를 분노 사회로 규정했다.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른 표현이 될 수도 있겠지만 과정을 해석해보면 한국 사회는 근본적으로 분노 사회 이전에 혐오 사회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우선적으로 혐오하기 때문이다.

분노는 화를 내는 거다. 혐오는 미워하는 거다. 골목길에서 누군가 경적을 울리면 부지불식간 직접적으로, 현상적으로 화가 나지만, 특정 집단이나 집단에 속한 혹은 하는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왠지 속할 것만 같은 특정 인물에 대한 분노는 그 대상이 단순히 싫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단계적으로 화가 나게 되는 거다. 싫음을 인지한 뒤 화를 내는 절차로 넘어가는, 다시 말해, 쟤가 싫으면 쟤가 하는 모든 행동이 다 좆같아 보이는 뭐 그렇고 그런 거다.

존 스튜어트 밀은 질적 공리주의를 주장하며 인간이 사회 전체 구성원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희생할 수 있는 존재라고 했다. 그 말은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의 기준만큼 타인의 행복을 인정할 때 비로소 행복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다. 행복은 나눌 때 진정한 행복이 된다. 결국 개인은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해야 하고, 그런 노력의 결과로 인해 사회 구성원 다수가 행복한 사회가 되면 그 사회에 속한 개인이 행복해질 수 있다. 정말이지,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작정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라는 부탁보단 적어도 사전적이고 임의적인 프레임을 씌우지 않고 미워해 주세요, 라는 부탁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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