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명백 오빠!”
 헐. 이영이였다.
 “으악, 네가 왜 여기에?”
 “나랑 놀자. 데이트하자, 데이트!”
 나는 과장되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안 돼. 너 나 철창 들어가는 꼴 보고 싶니? 너 미성년자잖아!”
 “엥? 겁쟁이!”
 잠시 후.
 “근데 이영아, 너 아까부터 왜 자꾸 날 따라오는 거니?”
 “오빠가 좋아서. 몰랐어? 나 오빠한테 완전 빠졌잖아. 아, 그리고 내가 톡 보내면 답장 좀 빨리해. 너무 느려.”
 헉. 이거 이러다 조만간 수갑 차겠구나.
 “그래. 놀자. 대신 아주 건전한, 순정 만화에 나오는 그런 데이트를 하자꾸나, 아가야.”
 “싫어. 키스하자!”
 나는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일부러 아닌 척했다.
 “미쳤냐? 내가 너랑 키스하게.”
 “그럼 섹스할래?”
 오호, 수갑이 아니라 전자 발찌로구나. 먼 곳에 계신 어머니, 안녕히 주무셨는지요. 오늘따라 하늘이 유난히 푸르르네요.

 나는 이영이와 드라이브를 하고 파스타를 먹었다.
 “그나저나 학교 문제는 어떻게 됐어? 그날 이후로 좀 바뀐 게 있어?”
 “응, 애들이 뭐랄까, 잠잠해졌어. 여전히 친구는 없지만 한두 명쯤은 금방 친해질 수도 있을 거 같아.”
 이영이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나는 집 근처 놀이터 벤치 밑에 힘없이 쓰러져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흔들어 깨워 보았지만 미동도 없었다. 빠직! 응? 이게 다 뭐지? 아스피린? 바닥에는 수만 개의 알약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이야, 이놈은 또!
 나는 뒤에서 녀석을 끌어안고 혼신의 힘을 다해 흉부 압박을 했다. 제발, 제발, 나와라. 빨리 나오란 말이다. 쿨럭! 수십 개의 알약이 뭉텅이로 엉켜져 튕겨 나왔다.

 “자, 여기.”
 나는 그에게 라이더 재킷을 벗어 건네주었다. 그는 재킷을 받아든 채 한숨만 내쉬었다.
 “이제 좀 괜찮아? 무슨 일인지 나한테 털어놔도 돼.”
 “감사합니다…….. 사실 저 취준생인데요. 그러니까 그게, 너무 힘들어요. 면접도 못 보고 거의 다 서류에서 탈락하고. 그렇게 수없이 떨어지기만 하다 보니까 자존감도 떨어지고.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하나……. 처음에는 그래도 나름 견딜 만했는데요. 이게 점점 길어지다 보니까 이제 가끔은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숨이 잘 안 쉬어져요. 가슴 속에 뭐가 막 있는데, 울렁거리는 게, 뭉클한 게 있는데 그게 나올 듯 말 듯 꿈틀거려서 미치겠어요. 하루 종일 피곤한데 잠은 안 오고, 우울하고, 작아진 거 같고, 쓸모없는 놈이 된 거 같고. 그래서 아! 세상에 나 같은 건 없어도 되겠구나, 괜히 아등바등 살아 있어서 식량만 축내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안해요. 너무 미안해…….”

 “미안하다고? 누구한테?”
 “그냥 다 미안해요. 그냥 다…….”
 “제일 미안한 사람이 누군데?”
 “부모님이죠. 시골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계신데, 죄송해서 미칠 거 같아요. 얼마 전에도 또 돈을 부쳐 주셨는데, 사실 지금 가게가 거의 망해 가고 있단 말이에요. 근데 그 돈을 꼬박 한 푼 두 푼 모아서, 시내에 있는 은행까지 나가서 부쳐 주신단 말이에요. 버스비 아끼려고 걸어서! 그런데 전 그 돈……. 다 써 버렸어요. 취직할 때까지 친구들이랑 연락 끊다가, 저번에 모처럼 동창들 만났는데 글쎄, 방심한 사이에 술값이 엄청 나온 거예요. 그중 한 놈이 자기가 낸다고, 네가 돈이 어디 있냐고 하기에, 홧김에 계산해 버렸어요. 고시원에 사는 놈이 자존심 때문에. 죽어야 돼요. 나 같은 건……. 인간 실격이라고요!”

 녀석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책하기 시작했고, 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녀석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야!”
 “네?”
 “너 진짜 인간 실격이구나.”
 “갑자기 그런 말을…….”
 녀석은 울먹거렸다.
 “세상을 너 혼자 사냐? 너는 단지 너만을 위해 사는 게 아냐. 너는 널 사랑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 네가 없어져 버리면 아무 일도 손에 안 잡혀 멍하니 유령처럼 살아갈 사람들을 위해서도 사는 거야. 알겠어? 네가 아까처럼 죽어 버리면 너희 부모님은 죽는 거보다 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릴 거라고! 그런데도 죽는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그거야말로 진정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인간 실격이다! 사죄해라. 부모님한테. 살아있음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있음으로 사죄해라.”

 “아…….”
 녀석의 놀란 눈에는 핏발이 섰고 눈물이 고였다.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쉰 뒤 자리에서 일어나며 엉덩이를 세게 털었다.
 “엉덩이 팡팡! 궁둥이 팡팡! 팡파라팡팡, 팡팡! 파라파라팡팡, 팡팡!”
 활기찬 내 동작에 녀석은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다.
 “우리 사실 비슷한 처지야.”
 “어?”
 “아닌 줄 알았지? 멋있는 말하니까 뭐 대단한 게 있는 줄 알았지?”
 “어?”
 “난 취직 같은 건 꿈도 안 꾸고 요즘 알바나 찾고 있다고. 나이도 엇비슷해 보이는데 어쩌면 우리 동갑일지도 몰라!”
 “아……. 응.”
 “죽지 마, 인마. 친구끼리 반말로 말해 봐. 다신 자살하지 않을게.”
 녀석은 멈칫거렸다.
 “다신…….”
 “따라 해! 다신, 자살하지, 않을게!”
 “다신……. 자살하지 않을게…….”
 “옳지! 잘한다! 그래, 좋아. 앞으로 서로 칭찬이랑 격려, 응원 왕창 해주기! 알았지? 아이, 귀여워. 아, 절대 오해하진 마라. 내 성적 취향이 그쪽은 아니니까.”

 그 후로 한참을 연락하며 지내다 언젠가부터 다시 연락이 닿지 않는 바보 같은 녀석. 네놈이 도통 어디로 가 버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설마 정장 따위나 입고 다니는 진짜 바보가 된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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