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처럼 자유롭게

 하필이면 내가 그날 그 시각, 그 장소에 있어서 보라를 만나게 된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일이 이렇게 돼 버리면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잖아. 혹시 나한테 노망에 대한 죄책감이 있나? 보라를 구한 게 운명적이었다는 느낌이 드는 건 단지 기분 탓일까?
 끼익! 헉. 뭐야? 저 여자애 혹시 죽으려고 하는 거 아냐?
 교복을 입은 한 소녀가 수족관 앞에 전시된 작은 어항에 얼굴을 집어넣고 있었다. 나는 바이크를 세우고 재빨리 소녀의 목덜미를 잡아끌어 밖으로 건져 냈다. 의식이 없었다.
 “어이, 학생! 야, 인마! 너 이 녀석!”
 나는 사정없이 볼을 두드렸다. 나 원 참. 죽는 방법도 가지가지구나. 녀석의 가방에는 온갖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소녀의 이름은 이영. 여고생이었다. 우리는 봄 내음을 맡으며 함께 거리를 걸었다.
 “죽는 거도 쉽지 않구나. 나 있지. 물고기가 너무 좋아. 특히 바다에 사는 물고기. 그래서 그냥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물고기랑……. 영원히 같이 살고 싶었어.”
 “시끄러워. 합리화하지 마. 심지어 어항에 갇힌 애들은 자유롭지도 않잖아.”
 “그런가?”
 “그나저나 너 외국인이야? 발음이 좀 특이한데.”
 “나 외계인인데?”
 “그래. 4차원인 건 확실해.”
 이영은 깔깔거렸다.
 “나 사실 재일이야. 그리고 혼혈이야. 도쿄에서 학교 다니다가 얼마 전에 서울 학교로 전학 왔어. 오기 싫었는데 어쩔 수 없이 와 버렸어.”
 “그렇구나. 근데 문제가 뭐야?”
 “문제? 애들이 내 발음 듣고 놀려. 웃긴가 봐.”
 “웃기긴 웃겨.”
 “아이, 죽을래?”
 “장난이야. 웃기긴 한데 참을 만해. 아니, 솔직히 매력적이야. 궁금한 게 있는데 그럼 일본에서 다니던 그 학교에는 다 재일 교포들 밖에 없어?”
 “아니, 꼭 그렇진 않아. 한국 기업 주재원 자녀들도 다녀. 요즘에는 오히려 걔네가 더 많을 걸? 애들이 좀 재수 없어서 그렇지.”

 우리는 주스 가게에 들렀다.
 “맛있다!”
 이영은 갑작스레 고개를 떨궜다.
 “나 학교 가기 싫어. 애들이 자꾸 놀리고 괴롭혀. 나보고 일본년이래. 쪽발이년이래. 맨날 내 말 따라 하고 툭툭 치고 지나간 다음에 자기들끼리 웃어. 근데 익숙해. 도쿄에서도 한국 학교 다니기 전에 일반 학교 다녔거든. 여기도 일반 학교라 적응 안 되는 건 마찬가지야.”
 “요즘에도 그런 게 있단 말이야? 시대가 많이 변했잖아. 서로 인식도 많이 좋아지고.”
 “겉으로 보기엔 그럴 수도 있겠지. 속은 달라.”

 나는 그녀의 편을 들어 주고 싶었다.
 “학교 가지 마.”
 “뭐? 그게 어른이 할 소리야?”
 “나 어른 아닌데.”
 “아저씨잖아.”
 “오잉? 나 아저씨 아냐! 오빠야, 오빠. 명백 오빠.”
 “근데 얼굴이 왜 그렇게 늙었어?”
 “그건 하도 고생을 많이 해서……. 어렸을 때 약을 좀……. 아니, 그게 아니라 내 얼굴이 늙긴 뭐가 늙었어. 잘생겼구먼.”
 “잘생기긴 했어.”
 “진짜?”
 “응, 눈이 가느다란 게 실눈 뜬 거 같아서 귀여워. 좀 양아치 같긴 하지만.”
 “자식, 내 눈이 섹시하긴 하지. 양아치라기 보단 귀엽고 섹시한 날라리라고나 할까?”
 “얼굴 대.”
 이영은 주먹을 불끈 쥐었고, 우린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수다를 떨었다.

 부릉부릉. 나는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내일은 학교 갈 거지?”
 이영은 머뭇거렸다.
 “안 돼. 내일 발표 있는데 아직 준비도 못했단 말이야.”
 “겨우 발표 따위! 너 좀 전에 죽으려던 사람 맞아? 아니, 무슨 발표인데?”
 “몰라. 국어 시간에 앞에 나가서 하는 거 있어. 독후감 발표. 떨려. 긴장돼.”
 “이영아.”
 나는 무척이나 진지한 얼굴로 그녀의 눈을 지그시 바라봤고, 그녀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이번 기회에 한번, 네 자신에 대해 써 보는 건 어때?”

 다음 날 아침, 이영은 교탁 앞에 서서 서툰 발음으로 독후감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잔인하게도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로 그녀의 발음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전지적, 자까, 시점, 이므니, 다아!”
 “와하하, 존나 웃겨!”
 이영은 울먹거리는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감추기 위해 의식적으로 모든 단어를 또박또박 발음했다.
 “자자, 얘들아, 뭐하는 짓이니? 이영이, 발표 열심히 잘했고 어서 들어가 앉아.”
 하지만 이영은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꼬깃꼬깃한 메모지를 펼쳐 낭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맞습니다. 어쩌면 여러분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한국인이 아닙니다. 일본인도 아닙니다. 저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재일 한국인입니다. 엄마도 재일 한국인입니다. 아빠는 일본인입니다. 저는 제가 누군지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도 제가 누군지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이들은 모두 조용해졌고, 교실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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