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도자기

 “아이, 세트 메뉴 주문한 게 언젠데 아직도 안 나와!”
 대주는 프랜차이즈 햄버거 집 점원에게 짜증을 냈다.
 “죄송합니다. 손님. 금방 나올 거예요.”
 나는 녀석을 뜯어말렸다.
 “너 이러다 성격 다 버리겠다. 이미 버렸지만 더 버리겠어.”
 “그러게. 근데 나 오늘 점심도 못 먹고 일했단 말이야. 배고파 죽겠어.”
 “저분들도 점심 못 먹고 일했을 수도 있잖아. 아니, 아침도 못 먹고 일했으면 어떡할래?”
 “미안하다. 이게 다 스트레스 때문이야.”

 끼익. 호숫가 벤치 옆에 바이크 세 대가 나란히 주차되었다. 우리는 테이크 아웃한 햄버거를 우적우적 씹으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호태가 물었다.
 “대주야, 요즘 왜 이렇게 예민해. 또 무슨 일인데?”
 “김 부장. 그 새끼는 맨날 나만 괴롭혀! 진짜 죽여 버리고 싶어! 왜 나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냔 말이야. 회사에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일단 눈빛부터가 벌써 갈구는 눈빛이야. 그리고 업무 분담할 때 노골적으로 나만 일 많이 주고. 주변에서도 그래. 왜 대주 씨한테만 일 많이 주냐고. 업무 보고하면 미리 알려 주지도 않은 폰트, 글자 크기, 자간, 장평, 왼쪽 정렬, 오른쪽 정렬, 가운데 정렬! 사소한 거 트집 잡아서 일부러 퇴짜 놓는다니까.”
 나는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죽이자.”
 호태는 피식거렸고, 대주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진짜?”
 “응, 죽여 버리자. 어려울 게 뭐가 있어. 퇴근길에 복면 쓰고 주차장에 숨어 있다가 파이프로 면상을 후려갈기는 거야!”
 대주의 얼굴은 울상이 되었다.
 “근데 그러면……. 월급을 못 받잖아.”
 농담이 아닌 거만 같았다.
 “에이, 경찰 오면 금방 무료 숙식 제공돼.”

 대주는 태어날 때부터 남부러울 것이 없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 아빠는 중견 건설 업체 사장이었고, 외제차에 고급 양주, 골프채 등 없는 게 없었다. 대주 역시 또래들이 비해 값비싼 장난감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다 먹을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엄마와 아빠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 엄마 아빠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는 날에는 마구잡이로 부서지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대주는 언제나 엄마 편이었다.
 “엄마, 울지 마. 아빠 미워. 엄마를 울리고. 예쁜 엄마, 우리 엄마!”
 “아유, 착하기도 하지. 안아 줄게, 이리 온. 참, 우리 대주, 옆 반 영주 좋아한다며? 엄마가 더 예뻐, 영주가 더 예뻐?”
 “엄마! 엄마!”
 대주는 ‘엄마’에 멜로디를 붙여 제멋대로 노래를 불러 댔다.
 “이거 좋은 영화인데, 원래 대주 같은 어린이들은 못 보는 영화야. 근데 엄마랑 손잡고 같이 보는 건 괜찮아. 알았지? 손잡자.”
 대주에게 있어 엄마와 함께 본 영화 <사랑과 영혼>은 손에 꼽을, 잊지 못할 명작이었다. 둘은 거실에서 영화를 보고 베란다에서 도자기를 빚었다. 엄마 품은 참 따듯했다.
 “자, 옳지. 잘한다. 손을 천천히 움직여야 돼. 빨리 만들고 싶다고 손을 빨리 움직이면 도자기가 아파해. 우르르 무너져.”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IMF 사태가 터졌다. 아빠 회사는 부도가 났고, 온 가족이 빚쟁이들에게 쫒기는 신세가 되었다. 벌써 몇 번째 전학인지도 모를 만큼 수차례 이사를 다녔다. 친구라고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엄마 아빠가 긴 다툼 끝에 이혼을 한 것이다. 엄마는 미국에 있는 친척 집에 간다고 했다. 대주는 엄마에게 매달려 생떼를 썼다.
 “엄마, 나 아빠랑 살기 싫어. 나도 데려가. 한 번만.”
 “우리 대주, 착하지. 엄마가 미국에서 돈 많이 벌어 가지고 데리러 올 거야. 미국에서 장난감 자동차랑 이만한 로봇 사올게. 그러니까 아빠랑 조금만 같이 기다려. 응?”
 “싫어! 자동차 싫어! 로봇 싫어!”

 엄마가 떠난 뒤로부터 대주는 매일 밤 잠이 들기 전에 엄마가 남기고 간 도자기를 껴안았다. 엄마의 온기가 전해지는 듯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반지하 전셋집으로 이사를 했고, 이후 수차례 근처를 서성이던 빚쟁이들이 찾아와 아빠의 멱살을 잡았다.
 “어이, 사장님! 여기 숨어 계셨네요? 이야, 집 좋다. 아직 살 만한가 본데? 우리한테 이러면 곤란하지. 우리 쪽 큰 형님이 좀 뵙자고 하시네요.”
 아빠는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안 그래도 제가 먼저 연락을 드리려고 했는데, 기간을 조금만 더 마련해 주시면 우선 원금만이라도…….”
 “이 개새끼가 돌았나?”
 퍽! 덩치 큰 남자가 아빠를 구둣발로 차 버렸다. 아빠는 보기 좋게 나동그라졌다. 빚쟁이들은 집 안에 있는 물건을 있는 대로 다 부수기 시작했다. 대주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도자기! 저 멀리서 천천히 엄마의 도자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대주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안 돼!”

 아빠는 방바닥에 주저앉아 홀로 소주를 마셨다. 대주는 웅크린 채 훌쩍거리며 맨손으로 산산조각난 도자기 조각을 맞췄다. 아빠가 중얼거렸다.
 “그만해.”
 대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조각을 맞췄다.
 “그만하라고.”
 날카로운 조각에 찔린 대주의 손에서 피가 흘렀다.
 “그만하라니까!”
 아빠는 성난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대주의 양 어깨를 움켜쥐었다.
 “제발 그만해! 내가 잘못했으니까,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제발……. 그만해…….”
 아빠는 놀란 대주를 부둥켜안고 어린애처럼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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