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말을 할 줄 아는

 “야, 대박 사건! 나 좋아하는 여자 생겼어!”
 내 호기로운 외침에 호태는 바이크에서 내리다 말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
 “얼마 전에 얘기한 애 있잖아. 호수 저쪽에 빠졌던. 나 그 여자 구하다가 감기 걸려서 아직도 몸이 으슬으슬하다니까.”
 대주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예뻐?”
 “예쁘냐고? 예쁜 정도가 아냐. 완전 여신이라니까!”
 “여신이라고? 너무 과장하는 거 아냐?”
 “아냐, 너희가 직접 한번 봐야 돼. 눈 마주치고 있으면 심장이 터질 거처럼 두근거려!”
 “맞다. 근데 성격이 세다며? 심장이 터지는 게 아니라 쥐어 터지는 거 아냐?”
 “으하하, 방금 상상해 봤는데 맞아도 행복할 거 같다. 보라야, 사랑해!”
 대주와 호태는 서로를 마주 보며 낄낄거렸다.
 “하하, 미친 새끼. 그래서 고백은 했고?”
 “아니……. 어제도 식당에 들르긴 했는데 그 이상 친해지기가 어려워. 사연이 좀 있거든.”

 잠시 후, 대주는 화제를 돌렸다.
 “호태야, 넌 요즘 어떠냐? 애 키우느라 힘들지?”
 호태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글쎄. 그냥 그렇지 뭐.”
 “양육비 빡셀 거다. 잘 모아 둬라.”
 “안 그래도 학교 다니랴, 조교실에서 일하랴 바쁘다.”
 “조교 가지고 되겠어? 따로 아르바이트라도 해야지.”
 “나도 그러고 싶은데 강의 듣고 조교 일하는 거만으로도 시간이 없어.”
 “어휴, 하긴 고생이다. 아무튼 애 키우려면 다 돈이야, 돈. 누가 뭐래도 돈이 최고야.”

 호태는 다소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야, 대주 이놈아. 요새 좀 잠잠하다 싶더니 또 돈타령이냐? 돈이 최고긴 뭐가 최고야.”
 대주도 지지 않고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네가 대학생이어서 그래. 그거 진짜 사회를 모르고 하는 소리라니까. 나, IT 대기업 신입 사원? 정규직? 겉으로 보기엔 좋아 보이지. 사실은 힘들어 죽을 거 같아. 근데 어쩔 거야. 이제는 사회적으로 빈부 격차가 너무 심하게 벌어져서 좋은 아빠고 뭐고 없어. 돈으로 아이가 원하는 거 해줄 수 있는 능력! 특권! 그게 전부야! 나도 나중에 결혼해서 애 낳으면 그렇게 해줄 거고. 특히나 준이 같은 경우에는, 그 뭐야, 좀 더 특수한 그런 거 있잖아. 하여튼……. 더 좋은 교육 시켜 줘야지.”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랭해졌다. 나는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문제 제기를 했다.
 “저기, 근데 아까부터 궁금한 게 있는데 내 얘기는 벌써 끝난 거야? 기분 탓인가? 이상하게 내 얘기할 때만 시간이 빨리 가는 느낌이야.”
 망할! 분위기 바꾸기 작전 대실패! 호태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고, 정적 속에 시간이 멈춰 버렸다. 고개 숙인 호태의 눈가에는 보일 듯 말 듯 촉촉한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과거 호태와 지혜는 학과와 동아리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캠퍼스 커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은 속도위반으로 예기치 않게 준을 갖게 되었고, 다행히도 졸업 후 결혼이 예정된 사이였기 때문에 양가의 축하를 받았다. 하지만 머지않아 몸 가누기가 힘들어진 지혜는 휴학을 결정했다.
 “오빠, 우리 나중에 아기 낳으면 이름 뭐라고 지을까?”
 “음, 글쎄. 난 개인적으로 외자가 좋아. 깔끔하고 시원한 느낌을 주잖아.”
 “외자? 나도 괜찮은데, 부모님들이 좋아하실까?”
 “우리 결정은 대부분 다 존중해 주시잖아. 뭐가 좋을까. 준, 어때?”
 “준? 어머, 괜찮다! 귀엽기도 하고 멋지기도 해.”

 응애! 귀엽고 멋진 아들 준의 탄생. 그러나 탄생의 기쁨도 잠시, 돌이 지나면서부터 의심이 들기 시작한 그것은 만 24개월이 되어 현실로 다가왔다. 의사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렸다.
 “안타깝지만 지금 준이가 말을 잘하지 못하는 상태인 거 같습니다. 의학 용어로 무언증 또는 함구증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 약간의 자폐증을 동반한, 그러니까 정식 의학 용어는 아닙니다만, 소위 말해 벙어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여섯 살 정도가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언어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어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지혜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 내며 펑펑 울기 시작했다.
 “오빠! 우리가 키울 수 있을까? 우리처럼 어리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새내기 부부가?”
 호태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잘 키울 수 있지.”
 “아냐. 우린 못할 거야. 나 어떡해? 벌써부터 자신이 없어. 호태 오빠, 우리 준이, 더 정들기 전에 입양 보낼까? 우리 돈도 없잖아! 더 사랑해 주고……. 경제적으로 뒷바라지도 더 잘해 줄 수 있는 집으로 보낼까? 분명 그런 곳 한 군데쯤은 있을 거야. 그래, 부잣집! 부잣집 사람들은 교육도 잘 받았을 테니까 교양도 있을 거고. 그러니까 준이를 엄청나게 사랑해줄 수 있을 거고. 찾아볼까? 내가 집에 가서 한번 찾아볼게.”
 호태는 오열하는 지혜를 꼭 껴안았다.
 “지혜야,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마. 우리 사랑하는 준이를, 예쁘고 귀여운 준이를 어딜 보낸다고 그래. 무조건 우리가 키울 거야.”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정말? 진짜?”
 “당연하지! 할 수 있어. 믿자. 노력하자.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 다른 생각하지 말고 준을 세상에서 제일 멋지게 키워 보자! 수화로 아름다운 말을 할 줄 아는 어른으로 키워 보자.”
 “세상에서 제일 멋지게……. 아름다운 말을 할 줄 아는…….”

 다음 날부터 호태와 지혜는 최선을 다해 수화를 공부하며 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준에게 처음으로 수화를 가르치던 날. 아무 것도 모르는 얼굴로 강아지와 토끼 인형을 만지작거리던 준에게 어떤 말을 맨 먼저 가르쳐야 할까? 지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내 준의 눈을 바라보며, 눈동자를 바라보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준을, 사랑해. 엄마는, 준을, 사랑해. 엄마는, 준을, 사랑해.’

 어때? 준. 세상에서 제일 멋진 부모님이지? 조금만 더 기다리면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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