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어른

대학을 졸업하고 어처구니없게도 첫 직장이 되어버린 한 회사의 면접에서 나는 사장과 두 시간 가까이 되는 긴 대화를 나눴다. 사장은 교육에 대한 철학도, 젊은 세대에 대한 연민도, 정의감도 있어보였다. 그러다 사정이 생겨 그만두게 되었을 즈음, 그는 내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기 위해 지급일을 차일피일 미루다 나중에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퇴사하던 사원에게는 근무 중 발생한 손실액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임금을 주지 않으려 했다. 상사로부터 쌍욕, 겁박을 들은 주변 이야기, 사회 초년생에게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근무 기간을 강제로 깎은 주변 이야기 등 사회는 개새끼들로 넘쳐났다.

그 이후 내 직장은 자질구레하게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을 반복했고, 그러다 일하게 된 한 단체에서 사원들 간에 앞담화도, 뒷담화도 아닌 들을 테면 들어라 혹은 들었으면 좋겠다, 식의 일명 ‘옆담화’ 사건이 발생했고, 나는 국장과 팀장에게 문제제기를 하며 퇴사 의사를 밝혔다. 그들은 예상보다 진심이 담긴 차분한 목소리로 이해한다고 했다. 자세한 내막을 깊게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곁에서 본 그들의 모습은 온갖 개새끼들로 넘쳐나는 사회 속에서 상대적으로, 비교적, 그나마 좋은 어른들인 거 같았다.

좋은 어른이란 무엇일까? 좋은 어른은 부끄러워할 줄 아는 성인이다. 애당초 부끄러울만한 일을 하지 않는 게 가장 현명한 방안이겠지만,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나이를 먹어서도 여전히 실수하고, 실패하고, 가치 판단에 의해 누군가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결국 사후에 부끄러워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부끄러움에 따른 조취나 행동은 무엇인가에 성립 여부가 달려있다.

좋은 어른의 ‘좋은’이란 표현은 다소 막연한 부분이 있는데, 이는 사실 ‘성숙한’과 ‘연민을 느낄 줄 아는’, ‘자신과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맞닿아있지 않은 타인에게 이성과 감정을 이입할 줄 아는’과 그리 거리가 먼 표현이 아니다. 좋은 어른이 되자. 우는 방법을 잊어버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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