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까 말까

결혼은 환상이자 제도다. 특히 여자 아이들 같은 경우 ‘나는 커서 석양이 지는 야외 잔디밭에서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하얗고 예쁜 드레스에……’같은 환상을 키워오곤 한다. 이렇게 만화영화같이 비현실적으로 구체적이지 않아도 포괄적인 기대치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남편이 평생 자기만 바라봐! (우리 아버지는 말했다. 가족 몇 명 모여서 하나, 둘, 셋, 결혼 끝! 외치고 결혼식을 끝내도 좋다고). 문제는 그 환상을 충족시키는 일이 시작부터 녹록치 않다는 사실이다. “백번 양보해서 결혼했다 쳐. 애는 또 어떻게 낳아서 기르려고?” 비혼주의자 친구들의 일침이다. “혹시 주위에 괜찮은 남자 없니? 응?” 엄마는 명절 스트레스를 넘어 일상 스트레스로 등극한다.

사실 결혼 적령기는 없지만 출산 적령기는 있다. 사회학적으로 존재하는 타자의 시선은 무시하기 어려울 뿐 극복 불가능하지 않다. 다만 노산의 생물학적 나이는 바꿀 수 없다. 현대 의학이 노산을 미루는 약을 개발했다고 해도 별로 먹고 싶지 않다(내가 먹으면 어떻게 되는 거냐!).

환상과 현실의 괴리를 탈피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결혼이 제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를 역으로 이용하는 건데, 예를 들어, 뚱뚱한 여자가 결혼을 기점으로 30kg 다이어트를 결심하는 거다. 물론 인간은 변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결심이 지켜질지 안 지켜질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자신을 가다듬고 상대를 배려하기 위한 시도임에는 틀림이 없다. 예시가 좀 구렸지만, 어쨌든 결혼을 역이용하자는 주장이다. 이는 결혼의 내용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말자는 뜻이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실리적으로 이용하자. 변화의 추진체로, 기점으로 삼자.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스펙터클은 한정되어 있다. 명징한 기점 없이, 으레 남들 다 하니까 하는 결혼은 피해자를 양성할 수 있다. 그 피해자란 배우자와 자녀, 자기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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