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정의

거지를 돕지 말자. 벤츠나 포르쉐를 타고 퇴근할지도 모른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돕지 말자. 자칫하다 노인 사기단에 휘말릴 수도 있다. 버스에서 모르는 할머니의 짐을 들고 따라 내렸다가 뒤에 오던 벤에 납치될 수도 있다. 꼭 그렇지는 않다 하더라도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다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여기 앉으세요.” 할머니는 깜짝 놀라 무릎을 굽히다 고혈압으로 쓰러져 내 위에서 죽을 수도 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 억울한 표정으로 “같이 앉자는 얘긴 아니었는데.”라는 반응을 해야 될지도 모른다.

교과서적으로 돕지말자. 정의라는 건 그런 거다. 주위 시선에 의해 강압적으로 돕는 정의는 진정한 의미의 정의가 아니다. 도움이 필요한 상대의 정도를, 유약해 보이고 불쌍해 보이는 정도를 파악하는 건 도움을 베푸는 자,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자, 본인의 몫이다. 도와주고 싶을 때만 도와주자. 도와주기 싫을 땐 도와주지 말자.

나도 피곤해 죽기 일보직전일 때, 다리가 아픈 나머지 경련이 일어나는 와중 할아버지가 하필 내 앞에서 서성일 때, 굳이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애써 일어나 돕다 다리를 다치면 정의의 완결성이 무너지고 만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할아버지는 죄책감으로 수명이 단축! 이른바 ‘나비효과’로, 뭐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의란 건 그만큼 교호적이다. 서로 어긋나게 맞춤으로 인해 번갈아 행할 수 있는 여지를 창출해내는 것이다.

광장에서 시위하기를 좋아하는 어떤 노인은 내게 “싸가지 없는 놈아, 의외로 일어날 수 있는 아주 작은 확률까지 계산해 전체적인 정의의 틀을 부정하려고 하는 거냐!”라고 지적할 지도 모른다. 정답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하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정의라는 건 당사자 스스로가 정의 내리는 거다. 그게 진짜 정의다. 그 이상은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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