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광분

“그래서 지금 날 해치고 싶은 거야?” “네가 먼저 날 상처받게 했잖아.” “무슨 상처?” “…….” 그해 여름, 우린 어떤 한때를 보냈다. 수년 전부터 알고 지낸 한 폴란드 친구를 통해 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고, 이후 많은 걸 함께 하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야? 그런 일 없었잖아. 우리 그날 되게 맛있는 저녁도 먹고 산책도 하고 그랬잖아!” “시끄러워. 자꾸 그러면 네가 날 강간했다고 경찰에 신고할 거야!” 그녀는 병적으로, 잔인하리만치 공격적인 방식으로 자신이 소중한 존재이며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려 들었다.

경계성 인격 장애를 앓고 있던 그녀는 매일같이 약물을 복용했다. 아버지로부터 매질을 당했으며, 성폭력의 피해자였고, 자해로 인한 상처 자국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눈물을 쏟기도 하고, 망상과 공포에 시달렸으며, 현실 도피를 위해 스스로의 기억을 왜곡하곤 했다. 난 어리석게도 사랑의 힘으로 치유할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다. 결국 본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나와 헤어지는 게 두려웠던, 버림받을까 두려웠던 그녀는 정을 끊어 내기 위해 내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걸로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했고, 그녀들은 도시 한복판에서 계란을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처절하게 계란세례를 받았다.

시간이 흘렀다. 불현듯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혹시 아직도……. 내가 그때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듣고 싶다면 마지막으로 한 번 만나 줄래? 변명이라도 하지 않으면 영영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아.” 눈물이 쏟아졌다. 얼마 후 그녀는 폴란드로 되돌아갔고, 한여름의 광분은 사그라들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을까? 잘 모르겠다. 아마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걸 그녀에게서 봤고 그것이 결코 그녀가 아니었음을 알지 못했던 게 아닐까. 서늘한 가을이 찾아왔고, 나는 누군가를 깊게 사랑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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