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괜찮아 다다다다다

세계 최악의 선진국. 한국 사회를 상징화한 표현 중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있을까? 오래전부터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수하고도 독자적인 콤플렉스, 그 어두운 단면에는 수많은 강박이 도사리고 있다.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 싶은 일이 정말로 일어나는 상식을 벗어난 사회, 인간 소외 현상이 일어나든 말든 너 일하기 싫으면 관둬, 대신 할 사람 줄섰어, 라는 식으로 재벌 총수가 돈으로 다스리는 사회, 사생활 영역에 침범을 자행하고도 잘못을 인지하지 못하는 교양 없는 사회, 눈치를 보며 눈치 없다고 면박과 핀잔을 주는 사회, 상명하복으로 가르치려드는 사회, 태어날 때부터 급이 나뉘어져있고 죽을 때까지 그 급의 격차가 좀처럼 줄지 않는 사회,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공정한 사회 구현과 적폐 청산에 대한 열망은 용광로처럼 들끓지만 드높은 현실의 장벽 앞에 좌절되기 일쑤인, 해결되지 못한 분노의 힘을 무고한 시민들끼리 풀 수밖에 없는, 졸렬하게 패배하는 악순환의 과정이 일상으로 고착화된 사회.

우리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는 세계 최악의 선진국에 살고 있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순을 지켜야 한다.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문제를 원자 단위로 해체해야 한다. 무엇이 우리가 가진 콤플렉스의 핵심일까? 그건 오랜 역사에 걸쳐 반복되어 온 ‘계급에서부터 계층까지의 문제’다. 위계질서에 따른 억눌림, 억눌림으로부터 유래한 신분 상승에 대한 갈망, 자신의 우위를 수호하기 위해 수직 이동을 저지하는 데 동원되는 무자비한 수단들, 그 수단들에 피해를 입고 낙오자로 전락하지만 그 안에 또 다른 권력과 계층을 창출해냄으로써 안도에 잠기는 이기와 기만. 이 프레임의 무한한 반복이다.

단언컨대 모든 문제의 근원은 ‘교육’에 있다. 대의 민주주의를 악용해 먹고사는 정치인들, 불법 자금 조달과 뇌물, 횡령, 배임, 세습 등을 일삼는 기업인들, 그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익숙해져버린 패배주의적 관념의 시민들에게는 어린 시절이 있다. 그들은 모두 누군가로부터 특정 시기에 특정 교육을 받으며 자라났다. 현재가 그 결과다. 결국 장기적이고 종국적인 극복 방안은 시민들이 교육 정책의 방향성, 입안 과정에 관해 관심을 기울이고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거뿐이다.

우리는 이런 사회 구조와 성원의 심리 기제를 전복시키기 위해 민중사학을 교육의 전제로 삼아야 한다. 산업화, 시민이 했다. 민주화 운동, 시민이 했다. 교육을 바꿔내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이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타인의 생명을 같잖게 취급하는 권력이 지배하는 현 구조 속에서 우리의 목숨은 파리 목숨이다. 귀중한 가치로 여김을 받지 못할 때 귀하지 않게 행동하는 건 시의적절한 거다. 고로 존재론적 가치를 제고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거라면 1초 아니, 1초를 1000분의 1, 10000분의 1로 잘라 쪼갠 시간에까지 목숨을 걸어야한다. 그렇게 목숨 걸고 싸워 민중의 생명과 권익이 중시되는 사회가 탄생했다면 그땐 함부로 목숨 걸지 말자. 왜? 귀해졌잖아.

교육 개혁과 병행되어야 할 건 다름 아닌 ‘위로’다. 위로는 마음을 안심시킨다는 차원에서 자체적으로도 중요성을 갖지만, 무엇보다 위로만한 동력이 없다. 인디밴드 ‘무키무키만만수’가 2012년에 낸 ‘2012’라는 앨범이 있다. 나는 이 앨범에 한 시대의 우울이 깃들어있다고 믿는다. ‘깜짝 놀랐지, 너보다 머리가 커서, 괜찮아, 괜찮아, 다다다다다.’ 이 어처구니없이 웃긴 가사에 어처구니없이 눈물이 흐른다. 요즘, 특히나 요즘 같은 시기에 사는 우리에게는 괜찮다고 말해주는 위로, 주문 아닌 주문 같은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함께 사회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교육을 이야기하고, 위로를 하자. 그게 균형 잡힌 사회로, ‘교양 있는 명랑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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