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라는 이름의 돈데크만

치기 어린 생각이었을까? 재야에서, 야생에서 업적을 이뤄내고 싶었다. 이곳저곳을 전전했다. 평범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고,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짜증이 났다. “재수까진 괜찮아도 삼수는 진짜 무리 아냐?” “나 8수야.” “그런 게 있어?” “없어.” “보통 8수해서 대학오니?” 맞다. 난 세상에 잘 없는 걸 했다. 물론 그 기간 내내 수험을 한 건 아니었지만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하기까지 햇수로 무려 8년이 걸렸다. 그런 내가 대망의 졸업을 하다니.

한예종에서 있었던 많은 일 중 기억나는 거 몇 가지. 패기 좋게 2학년 수업에 들어온 영상원 모 학과의 한 신입생은 자신을 토론의 제왕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토론이 시작되자마자 자신 있게 손을 들더니 강의실에 있던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 대해 얼마나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으세요?” 5초간 정적이 흘렀다. ‘아싸, 다 발랐다.’ 나는 주변 애들에게 입모양으로 이런 말을 했다. ‘저 새끼 뭐하는 새끼야?’

한때 같이 살기도 했던 친한 미술원 친구는 나에게 행위예술을 도와줄 걸 제안했다. 광화문광장. 친구가 한창 돌아다니며 멜로디언을 불고 있는데, 시에서 나왔는지 구에서 나왔는지 친구를 제지하는 아저씨가 나타났다. “이봐요, 학생!” 친구는 계속 악기를 불며 고개를 돌렸다. 아저씨가 왼쪽으로 오면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오면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 저기, 잠깐만!” 친구의 비장한 얼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The show must go on.’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 사람 말 잘 안 듣지?’

조금 서글픈 얘기도 하나 있는데, 유럽 등지에서 교환학생으로 오는 친구들 말고, 특별전형으로 오는 아시아 친구들이 있는데, 우리는 그들을 ‘아마 장학생’ 또는 ‘아마’라고 불렀다. 한번은 그들 사이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기숙사에서 한 아마 선배가 아마 후배를 앉혀놓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절대 한국 애들 앞에서 장학금 많이 받고 다니는 거 티내면 안 돼. 우린 있는 듯 없는 듯 있어야 돼. 알았어? 있지만 없어. 그게 아마의 자세야.”

아무튼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도, 우리도 이제 곧 서른이 될 테니까. 후회하지 않는다. 많이 돌아왔다고 해서 돌아왔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글쎄, 그건 후회해봤자 소용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적어도 조금은 다른 어른이 되는 연습 따위는 끝나버렸을 테니까. 합리화라기보다는 뭐랄까, 굳이 애써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 않다. 만약 후회라는 이름의 돈데크만이 있다면 그런 건 저 멀리, 우주 저 먼 곳으로 내던져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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