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은 비극으로부터

한겨울에 떠나는 동유럽 혹은 중부유럽 여행. 우리는 체코 프라하로 입국해 버스를 타고 오스트리아 빈으로, 빈에서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류블랴나에서 블레드로, 다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를 거쳐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부다페스트에서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로 움직였다. 여행을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벌써 유럽만 세 번째잖아! 남미나 아프리카는 도대체 언제 가는 거냐! 항공권과 체재비를 자꾸만 최저가에 맞추다보니 언젠가부터 돈에 여행지를 맞추게 되었다. 한마디로 어디 가고 싶냐가 아니라 얼마 있냐가 되어버렸다.

추웠다. 하지만 추위 속에서도 느낄 수 있었던 건 과거 소련의 영향권 다시 말해, 공산권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서유럽을 따라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자유경제적, 자본주의적 흔적들이었다. 쇼핑을 좀 해야겠다! 꽝! 나는 류블랴나 시내의 한 백화점 입구에 있던 유리문에 이마를 세게 부딪쳤다. 그대로 길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너무 아팠다. “이 거지 놈들! 유리가 너무 깨끗해! 없는 줄 알았어!” 웅크리고 앉아 비명을 질러댔다. 이마에 혹이 생겨버렸다.

부다페스트에서 우리는 무임승차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돈을 아끼려고 그랬다기보다 아무리 찍어도 계속 찍히는 승차권 때문이었다. 야경을 보기 위해 트램을 타고 세체니 다리로 향하던 중 갑자기 나타난 단속원 아주머니와 아저씨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트램에서 내리자 경찰이 다가와 배지를 보여주었다. “이거 일회용 승차권인데 너희들 벌써 몇 번을 찍은 거야? 벌금 내야 돼.” 일회용 승차권 가격의 수십 배에 달하는 벌금이었다. “우리 여기 온지 얼마 안돼서 몰랐어. 한번만 봐주면 안 될까?” “안 돼. 법이라서 어쩔 수 없어.”

“우리 외국인이고 대학생들이라 잘 몰랐어. 안내도 대부분 헝가리어로 되어있어서 알기 어려웠다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무조건 내야 돼.” “현금이 거의 없어서 그런데 혹시 카드 돼?” 그는 분명 여기서 살짝 당황해했다. 계속 몰아쳐라! 동정심에 호소하기 위해 나는 일부러 시간을 끌며 지갑에 있던 동전을 다 보여주었다. “지폐는 이거밖에 없고 나머지는 다 동전이야.” 수많은 동전이 찰랑거렸다. “무슨 짤짤이하니?” 경찰은 씁쓸해했다.

“지금 안내면 나중에 우편으로 낼 수도 있는데 그러면 벌금이 두 배가 돼.” 역효과다! 작전상 후퇴! “유로화가 조금 있는데 이거랑 섞어서 내면 안 될까?” 결국 유로화랑 포린트를 섞어서 내버렸다. “이거 새 승차권이야. 그냥 한 장 공짜로 줄게.” 경찰과 단속원들은 길 건너편으로 건너가 담배를 피웠다. 잠시 후, 그는 다시 길을 건너왔다. “벌금 돌려줄게.” 이렇게 고마울 데가! 불쌍해보였나 보다. “다 돌려줄 수는 없고 포린트만 돌려주는 걸로 할게.” 우리는 웃으며 악수를 했다. 이제 보니 썩 괜찮은 놈이잖아! 희극은 비극으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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