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페미니스트

예전에는 대놓고, 지금은 그렇게 하면 욕먹으니까 암묵적으로 강제하는 상이 있다. 일명 부속품으로서의 여성. 목욕물 받아 놓고 남편이 퇴근하기를 기다리는 ‘여성적인’ 아내 상은 이제 완전히 저물어야 한다. 목욕물은 목욕탕 주인이 제일 잘 받는다. “에이, 그것도 옛말이지. 요즘 누가 그래?” 목욕물은 상징일 뿐, 아직도 사회에 그런 기류가 있다니까! 한마디로 ‘드세다’라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평가로부터, 타인에게 직접적 피해를 입히지 않는 선에서 마음껏 ‘드세질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거다.

“여자가 어디서 감히!” 여성이 남성에게 대항하기 위해 반격의 태도를 취하는 것을 두고 일부 남성은 남성을 이기려고 결국 남성의 태도를 빌려 오는 수밖에 없구나, 그거 참 수동적인 자세로구나, 폄하하기 바쁜데, 틀렸다. 그건 엄연히 양성의 언어다. 남성의 언어이기 이전에 자연 상태에서 인간이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원시인들이 맹수에게 공격을 받을 때 방어적으로 대응하던, 종국적으로 인류가 보존되어 올 수 있었던 생의 언어다. 도대체 언제까지 그들이 나서기 두려워하기를 바라야 하는 걸까? 상대가 두려워하기만을 바라는 건 상대가 커져 내가 작아질까를 염려하는 마음과 그리 다르지 않다.

엠마 왓슨은 이런 말을 했다. “만약 당신이 평등을 믿는다면 당신은 이미 무의식의 페미니스트 중 한 명일지도 모릅니다.” 맞다. 나는 무의식의 페미니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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