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킹맨션

환상적인 야경과 쇼핑의 천국, 금융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는 홍콩.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가다 당시 크리스토퍼 도일 촬영감독의 집이었던, 왕페이가 양조위를 훔쳐보던 지점에 이르러 고개를 까닥였다. “저기만 지나가면 다들 양아치가 돼.” 나는 무릎을 굽혀 앉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사 갔네. 크리스토퍼 도일이 저기서 훌라후프 돌리고 있진 않을 거 아냐.” 창가 쪽을 자세히 보면 미세하게나마 분홍색 훌라후프의 형상이 있었다.

그러나 홍콩의 화려함에는 이면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청킹맨션’. 캐리어를 낑낑 끌고 도착한 청킹맨션은 크게 다섯 가지 부류로 나뉘어져 있었다. 아프리카계 저임금 외노자들과 인도계 저임금 외노자들, 영세업자 홍콩인들, 서양인 관광객들과 동양인 관광객들. 이들은 한데 뒤엉켜 숨 가쁘게 오고갔다. 낮에는 주로 장사와 환전을 하는 곳이지만, 야심한 시각, 이곳은 우범지대로 돌변한다. 우리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묵게 되었다.

체크인을 요청하자 녀석은 아직 시간이 안됐다며 조금 더 기다리라고 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우리는 복도에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다. 마침내 문을 열고 들어간 호스텔에서 태연한 얼굴에 터번을 두르고 있던 인도인 사장을 만날 수 있었다. “너 그거 똥이지?”라고 할 뻔했다. 힘들게 배정받은 방의 침대에는 핏자국이 묻어있었다. 누군가 살해당한 게 틀림없어!

한번은 숙소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줄을 서 있었고, 흑인들은 술에 취했는지 왁자지껄 떠들며 버튼으로 장난을 쳤다. 아직도 그놈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더러운 눈빛. 더러운 이빨. 녀석의 빠른 말솜씨에 “너 축구선수 양말 먹었니?”라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만약 그랬다간 이를 닦는 게 아니라 이가 뽑힌다. 그럼에도 가끔 나를 추억에 빠져들게 만들던 건 바로 그곳의 내음이다. 온 복도를 휘감던, 향신료와 체취가 더해진 그 내음은 묘한 홍콩의 향기를 만들었다. 마카오는 어땠냐고? 마카오는 온통 카지노밖에 없는, 검은 돈이 지배하는 악의 소굴 같았다. 그게 다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