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마 유리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인 대입 체제로 돌입! 제2외국어를 선택해야만 했다. ‘스페인어로 가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잖아. 좋아! 스페인어에 내 인생을 건다!’ 정원 미달로 폐지됐다. 젠장! 좀 전에 인생을 걸었단 말이다! 나는 할 수 없이 일본어로 갈아탔다. 이럴 수가! 그곳에는 엄청난 이벤트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 자매결연 고등학교 학생들이 우리 학교 일본어 반으로 견학을 온 거다.

“고야마 유리카.” 나는 또박또박 발음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참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제비뽑기로 정해진 내 짝이었다. 다들 여럿이 뭉쳐서 놀 때 우리는 우리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정확히 어떤 감정으로,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랬다. 우리는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쉬지 않고 대화했다. 서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한류에 대해서도 이야기도 했다. “야, 너희 둘이 사귀냐?” 아이들은 핀잔을 주었다.

학교 벤치에서 유리카는 함부로 내 사진을 막 찍었다. 나는 이상하게 나온다며 못 찍게 했다. 막무가내였다. “보여줘.” “안 돼, 안 돼.” “지워줘.” “규 상!” 그녀가 떠나고 나는 한동안 멍했다. 그때였다. 아이들이 시끌벅적해졌다. 일본 아이들이 투숙하고 있는 시청 근처 호텔로 찾아간다는 것이었다. 나도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갈 수 없었다. 급하게 반 친구에게 공책을 빌려 편지를 썼다. ‘일본에 돌아가서도 날 잊으면 안 돼.’

퇴직하고 나서도 한참을 서울에 머물던 부모님은 충주로 이사를 갔다. 그전에 나는 내 방에 있던 짐을 정리하러 부모님 집을 찾았고, 추억 상자를 정리하다 구석에 있던 명찰 하나를 발견했다. 명찰에는 한국어와 일본어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고야마 유리카.’ 나는 어느 새 교복을 입고 있던 그때로 되돌아갔다. 무더운 여름날, 하얀 셔츠에 회색 바지를 입고 있던 그때, 벤치에 앉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때, 어설프지만 최대한 한 글자, 한 글자씩 발음하려 노력하던 그때로 되돌아갔다. “유리카, 잘 지내니? 어른이 되고나서 슬픈 미소를 짓고 있지는 않니? 아직도 마음속에 순수한 꿈을 간직하고 있니? 그때는 몰랐던 것들을 깨달아가면서 잃어버린 것들은 무엇이니?”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