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핑 버스

독일인 커플과 택시를 나눠 타고 도착한 베트남 하노이 시내. 소문대로 스쿠터가 너무 많았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돼 길을 건너는 거조차 힘들었다. 며칠이 지났다. 나는 거리의 무법자가 되어있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무작정 앞으로 걸어가면 된다. 그러면 스쿠터들이 알아서 다 피해간다. 괜히 요리조리 피하느라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 더 피곤해진다. 물론 다 믿지는 말아야 한다. 방심한 틈을 타고 스쿠터 한 대가 일행을 세차게 치고 지나갔다. 운전자는 쌩하고 달아나버렸다. 그들은 뺑소니에 익숙해보였다.

하노이에서 머무는 마지막 날, 호텔 청소부에게 선글라스를 도난당했다. 그 청소부는 이걸 내다 팔면 부자가 되겠다며 지배인의 뺨을 때리고 호텔을 그만뒀을 수도 있다. 짝퉁이다. 근처 야시장에서 샀다.

우리는 장거리 슬리핑 버스를 타고 라오스로 넘어갔다. 덜컹거리는 차안에서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상념에 잠겼다. 신기한 거 한 가지. 버스에 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인종을 구별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인종 별로 나눠앉았다. ‘인종차별’이 아니라 ‘인종구별’이었다. 앞쪽은 동남아, 중간은 한중일, 뒤쪽은 유럽인들로 나뉘었다. 작은 지구 같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비교적 언어의 장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우리는 뒤쪽에 앉아 캐나다, 유럽 애들과 함께 놀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국경을 통과하기 전, 갑자기 버스가 멈춰 섰다. 차문이 열렸다. 직원들은 분주하게 대마초로 의심되는 박스를 들여왔다. 여행객들의 배낭을 다 끄집어내고 그 밑으로 박스를 밀어 넣었다. 눈앞에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국경 검문소에서 우리는 모두 내렸다. 걸어서 국경을 건넜다. 다시 버스에 올랐다. 이상한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불법 체류를 위해 숨어든 사람들이었다. 직원들과 거래를 하고 버스에 숨어 국경을 넘은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은 여러 모로 미끼였다.

비엔티안에서 방비엥을 거쳐 루앙프라방까지 이어지는 여정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우리는 미친 사람들처럼 미친 듯이 놀았다. 피자를 먹고 싶으면 피자를 먹었다. 술을 마시고 싶으면 술을 마셨고,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담배를 피웠다. 자전거를 타고 수영을 했다. 즐거움과 즐거움 속의 괴로움으로 인해 길에 쓰러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곳에서는 모두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한가롭게 놀고먹어도 되는 걸까? 정제되지 않은 황량함과 번잡함 속에 여유가 있었다. 내 인생의 즐거운 한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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