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마루 고등학교 3

친하게 지내다 어느 순간 멀어진 고등학교 동창이 한 명 있었는데, 어렸을 때 그 친구네 집에 가면 항상 팬티만 입고 있던 형이 있었다. 그 형은 친구가 뭐라고 하면 언제나 이렇게 대답했다. “닥칠 것!” 그게 그 사람한테 들은 유일한 말이었다. 공부를 지지리도 안했던 그 형은 결국 지방 전문대로 진학을 했고 군대를 다녀와 복학을 했다. 학교가 없어졌다. “이상하다? 분명 이쯤에 있었는데?” 아마 그 형은 고개 숙인 학교 직원의 사과에 이렇게 대응했을 수도 있다. “대학이 망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닥칠 것!”

좌우지간 당시 고등학교에는 ‘니뽄 삘’과 ‘유로 스타일’이 유행을 하고 있었는데, 사실 가장 강렬하게 학교를 강타한 패션 아이템은 ‘삼선 슬리퍼’였다. 학생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아예 슬리퍼를 신고 등교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학생주임은 이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교문에서 맹렬하게 슬리퍼를 압수하기 시작했다. “거기 너 이리와! 누가 슬리퍼신고 오래?” 멋있었다. 교칙을 어긴 학생들을 열심히 지도하는 모습에서 교육자의 본분이 느껴졌다. ‘저런 게 진짜 교사구나.’

다음날 수업시간에 본인이 신고 들어왔다. ‘음, 푹신하군.’ “야, 저거 내 거다.” “보통 애들 거 뺏어서 자기가 신니?” 그러다 적발됐다. “너희들 이리 나와.” 학생주임은 우리를 앞으로 불러냈다. 하지만 우린 쫄지 않았다. 오히려 타이밍에 맞춰 코를 골았다. “앞으로 똑바로 해라.” “드르렁.” “이것들이 자는 척을 해?” “드르렁.” “아니, 이놈들이 그래도?” “드르렁.” 자신감을 얻은 우리는 그 수업시간에 유독 더 장난을 치게 되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나올 거처럼 생긴 친구에게 “너 얼굴 찰흙이지?”라고 묻기도 했고, 종아리가 튼실한 여자애 뒤에서 볼링을 치기도 했다. 학생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실격이었다.

그렇게 활개를 치던 중, 한번은 다른 반 친구가 축구화를 빌리러 우리 반에 왔고, 나는 나 대신 축구화를 빌려줄 수 있는 애를 찾아냈다. 당사자 둘은 별로 친하지 않았다. “혹시 축구화 좀 빌려줄 수 있어?” “미안해. 빌려줄 수 있는데 냄새가 좀 날 수도 있어. 괜찮아?” “에이, 괜찮아. 친구끼리 뭐 어때.” 녀석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물함에서 축구화를 꺼내다주었다. “너 효모균 발효시켰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그랬다. 학창시절, 우리는 그렇게 온갖 종류의 장난을 쳤다. 웃고 떠들고 놀리고 괴롭혔다. 청춘을 걸었다. 하지만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잔뜩 줄인 교복을 입고 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졸업식 이후,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던 그날 이후, 어른이 된 이후, 열정이 독이 될 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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