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하늘의 종이비행기

지금부터 내가 들려줄 이 모든 이야기들을, 수많은 시간을 잡아먹은 이 이야기들을 길게 쓰지 않는 이유는 명백하다. 장황하게 늘어놓는다가 나도 모르게 이야기에 살을 덧대어 추억에 생채기를 내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마음속으로 긴 문장들을 수백, 수천 번 되뇌어봤지만 그렇게 복기하는 작업 자체가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또 흐르고 있음에도 나는 아직도 가끔 악몽을 꾼다.

그녀는 나를 속였다. 바람을 폈다. 아니, 나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다른 남자와 연애를 하고 있었다. 대화 중 나온 말실수를 통해 그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고, 나는 그녀와 그녀의 친구를 추궁했다. 그녀는 모든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나는 이성을 잃었다. 다른 어떤 감정보다 배신감이 컸다. 나는 그녀를 협박했다. 너희 가족에게 위해를 가하겠다, 부모랑 동생한테 모든 사실을 알리고 그 이상의 일도 하겠다고 못된 협박을 했다. 그렇게 하고나서야 겨우 사과 아닌 사과를 받아낼 수 있었다.

“걔한테 지금 당장 전화 걸어.” “그러니까 내가 얘랑 잘 안되면 되는 거지?” 그녀는 전화를 걸어 나를 바꿔주었다. 나는 격앙된 목소리로 모든 사실을 알렸다. 복수가 끝나자 통쾌한 마음보다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집에 데려다달라고 부탁했다. 저녁이 되어갈 무렵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그녀는 잠시 학교에 들렀다. “금방 올게. 여기서 기다려.” 나는 그녀를 기다리며 허탈한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그녀와 마주쳤다.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말도 없이 가버린 줄 알았단 말이야.” 나는 내가 했던 그날의 모든 일을 후회한다. 아무 말 없이 누구보다 대담하게 웃어버릴 걸 그랬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그녀를 사랑했다. 너무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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