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부터 최순실까지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누군가는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박근혜 게이트’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탄핵’이나 ‘하야’를 요구할 게 아니라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해야한다고 했다. 사회는 현재 완벽한 카오스다. 사실 ‘광우병 사태’ 때 벌어진 대규모 시위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예를 들어 누가 갑자기 쌍욕을 하면 바로 화가 날 수 있다. 하지만 외계어를 하면 일순간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단박에 화가 나지는 않는다. ‘이게 욕인가? 욕인가? 욕이구나!’하는 검증의 단계를 거치기 때문이다. 과연 ‘누구의’ 상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사태는 ‘우리의’ 상식 수준에서 분명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이다.

사회는 개인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개인과 유사한 생리를 갖지만 물리적으로 규모가 커진 만큼 모든 면에서 단위의 확장을 갖는다. 개인이 비극을 접했을 때 놀라는 게 불과 몇 초라면 사회는 좀 더 오래 걸린다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이제 막 1,2단계를 지난 3단계정도에 불과하다. 제대로 된 분노는 아마 5단계쯤 될 거다. 분명 그때는 온다. 더욱 놀라운 사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 수십, 수백 개에 달하겠지만, 그 끝에 사태에 방점을 찍을만한 기절초풍할 사건이 숨어있을 거다. 나는 적어도 그것이 ‘세월호 사태’ 관련 일은 아니었으면 한다. 나머지는 어떻게든 국민들이 감당해낼 테니까 제발 그것만은 아니었으면 하는 막연한 바람이다.

자녀를 둔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세월호 사태에 남다른 감정이입을 해온 친구가 있다. 최초로 벌어진 촛불집회에서 목격한 친구의 모습은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친구는 지체하지 않고 경찰이 방패막이를 하고 있는 일선으로 향했다. 어느 샌가 물병을 손에 쥐고 있었고, 전력을 다해 의경을 끌어내리고 있었다. 그의 분주한 몸짓에서 울먹거림이 느껴졌다.

분노의 올바른 대상이 의경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그 사실을 망각한 채, 혹은 그 외에 달리 취할 수 있는 방도가 없기 때문에 드러낸 행동이었다. 친구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시위는 분명 최순실 관련이었지만 그때부터 응축되어온 분노, 두 사건의 연계성에 관한 의혹으로 나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들리지 않는 외침을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을 살려내라! 아이들을 살려내라! 아이들을 살려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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