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백인

고등학교 때 처음 싱가포르에 사는 한 살 많은 누나와 채팅을 하게 되면서 채팅의 묘미에 눈을 뜨게 되었다. 채팅의 역사는 국제 연애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가까운 일본과 중국은 물론 미국,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네덜란드, 터키, 폴란드, 스페인, 멕시코, 코스타리카 등 전 세계 수십여 개국의 여성들과 채팅을 했다. 그중 연애로 발전한 경우도 수차례 있었다. 나는 자타공인 ‘명예 백인’이었다. 백인들과 잘 어울려 놀면서 얻게 된 별명이다(물론 알고 있다. 이 개념이 얼마나 오리엔탈리즘적인 동시에 패배주의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고로 이 별명은 풍자와 자조의 느낌으로 사용되고 있다).

클럽의 역사 역시 연애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내 머릿속에는 UFC와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USC라는 가상의 대회가 있었다. 나는 그 대회의 페더급 챔피언이었다. 코너 맥그리거였다. 연전연승을 기록했다. 수많은 KO와 TKO, 판정승을 이끌어냈다. 이성과 감성을 지배하고 절제하는 훈련, 처세술 훈련, 전략과 전술 훈련, 체력 훈련 등을 병행했다. 그건 더하기 훈련이 아니라 빼기 훈련에 가까웠다. 엄청난 기술을 연마하는 게 아니라 연애할 때 사람들이 흔히 빠지는, 흔히 빠질 수 있는 착각으로부터 도피하는 연습을 하는 거다.

물론 연애는 실전이었다. 남자들의 자신감과 여자들의 자존감 사이에서 벌어지는 줄다리기 대결이었다. 이런 대결에서 승리하려면 마인드 게임의 고수가 되어야 하며 훌륭한 윙맨도 필요하다. 빠르게 속공하는 스트라이커가 될 것인지, 지공을 펼치는 그래플러가 될 것인지도 결정해야 한다. 그래플링은 새벽 5시까지 버티는 닉 디아즈, 네이트 디아즈 형제의 ‘좀비 댄싱’ 같은 것이다(좀비 복싱 말고). 격전을 앞둔 대기실(화장실)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시합이 있는 날은 공기부터 달랐다. UFC 선수들이 경기 전 얼굴에 바세린을 바르듯 우리는 선크림을 발랐다.

무엇이 순정파였던 나를 괴물로 만들었을까? 그것은 언젠가부터 가지게 된 트라우마 때문일 거다. 나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나름의 철학을 구축하게 되었다. 혹자는 뭐 그리 어렵게 사랑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나도 동감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이유 없는 반항인지 이유 있는 반항인지 모를 반항이었다. 연애는 순응이자 반항이다. 좋으면서도 싫고 싫으면서도 좋은 게 연애이기 때문이다.

타고난 바람둥이들은 가벼운 관계를 추구하고 진지한 관계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결과보다는 과정 자체를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후천적 바람둥이들의 경우 헌신적으로 믿어온 진지한 관계가 틀어졌을 때, 그 틀어진 경험으로부터 바람기가 시작되기도 한다. 상처를 받을까 두려운 것이다. 한마디로 맨 처음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라고 외쳐놓고, 지가 그러고 있다.

이쯤 되어 다시 생각해보니 그동안 나에게 상처를 준 여러 아이들도 누군가에게 먼저 상처를 받은 채 나를 만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민 아닌 연민이 들었다. 언젠가는 누구도 모든 걸 그만두어야 한다. 그때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아니, 부끄럼이 있다면 모든 것을, 모든 것에 모든 것을 걸고 반성하고 뉘우치기를. 결국 내 이십대를 관통한 좌충우돌, 요절복통 연애사를 통해 얻게 된 교훈은 한 가지였다. 때에 따라 사람의 마음이 두 개 혹은 그 이상 여러 개가 될 수도 있지만, 그때가 지나고 나면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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