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 메이킹 바닐라

필리핀 마닐라국제공항에 입국했다. 때는 자정을 넘긴 시각.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호텔이 있는 마카티로 이동하기 위해 택시 승강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흥정의 전쟁터였다. “1200페소!” 그때 뚱뚱한 남자가 다가왔다.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했다. “300페소!” 그는 수백 미터를 달린 뒤 아니나 다를까 말을 바꾸었다. “마카티까지 900페소야.” 언성을 높여 싸웠다. 그는 택시를 돌린다고 했고 내가 그러라고 하자 실제로 돌렸다. ‘그렇다고 진짜 돌리냐!’ “알았어. 900페소 줄게.”

홍수범람으로 길은 엉망진창이었고, 나는 목적지에 이르러서도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근처 편의점에서 돈을 바꿔가면서까지 잔돈을 받아냈다. 결국 처음부터 바가지를 쓰고 호텔로 들어왔다. 나는 호텔 로비에 있던 사람들에게 적정 가격을 물어보았고 그들은 “165페소요.”라고 했다.

지프니를 잡아타고 도착한 퀴리노 역에서도 봉변은 이어졌다.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우리에게 사람들은 협박에 가까운 호객을 시도했다. 제발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겨우 택시를 탔다. “여기가 너희들이 가자고 한 장소야.” ‘뭔가 수상한데?’ 전혀 알 수 없는, 어수선한 분위기의 동네였다. 구글 지도를 켜고 싶었지만 와이파이를 연결할 곳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한 덩치 큰 사내는 문을 열고 나와 우리를 뒤쫓기 시작했고,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도망쳤다. 다행히 저기 지하철역이 하나 보이는 듯 했다. 충격에 휩싸였다. 퀴리노 역이었다.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호객꾼들은 협박을 했다. 택시를 잡아 줄 테니 돈을 내라고 했다. 아무리 거절을 해도 막무가내였다. 택시가 왔고 결국 그들은 내 지갑에서 돈을 강탈하듯이 빼앗아갔다.

그렇다고 해서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필리핀 혁명의 사상적 기초를 마련한 국민 영웅 호세 라잘. 라잘 공원에서 나는 일행에게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화장실이 아니라 라잘의 생가였다(다시 생각해보니 그리 좋은 일도 아니다).

도시 어느 지역을 가나 동남아 개발도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광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쇼핑몰들이 참 많았다.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헨리 시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허름한 신발가게에서 일을 하던 헨리 시는 훗날 필리핀 전역에 SM몰 등을 세우며 최대부호가 되었다고 한다). 해외 자본으로 건립된 마천루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광경과 다 쓰러져가는 가난한 집의 엄마들이 우는 아기를 업고 구걸을 하는 광경이 공존하고 있었다. 말라떼 산 안드레스 마켓에 도착했을 때 맨발차림의 아이들이 구름떼같이 몰려와 손을 내밀었다. 여기 아이들은 미주나 유럽 출신의 서양인들, 한국, 일본, 중국 출신의 동북아 사람들이 오면 구걸을 하는 게 일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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