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다

아마도 처음으로 벌였던 사업은 티셔츠를 만들어 파는 일이었을 거다. 티셔츠에 영화 포스터를 전사해서 팔았다. 한 장도 안 팔렸다. 이후 친구들과 구제 옷을 팔러 여대 앞으로 향했다. 한 장 팔렸다. 근처 떡볶이가게 아주머니가 한참을, 불쌍하고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하나 사줬다. 총 수입 5천원. 차비가 더 나왔다. 그 이후로 나는 창간 활동을 했다. 웹진을 차렸다. 광고료 0원. 망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싶어 좀 더 판을 키우기로 했다. 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국가별로 커뮤니티를 제공하고, 그 커뮤니티의 활성화 정도를 통해 각국별 담론의 총량을 재는 웹사이트였다. 사용자 0명.

지금 생각해보면(사실 지금도 여전하지만) 다소 황당한 일들을 벌였던 거 같다. 그 황당함의 정도를 비유하자면 연인끼리 처음으로 애정행각을 벌이고 난 뒤 여자가 “오빠, 나 사실 처음이야.”라고 하자 남자가 “없던 일로 하자.”라고 하는 걸 듣는 일이나 여자가 “오빠, 사랑해.”라고 애정표현을 하자 남자가 손가락을 이마에 갖다 대며 “엠창?”이라고 하는 걸 듣는 일과 맞먹을 정도다.

패인은 단연코 존재한다. 극단적이었다. 극단적인 생각으로 무언가를 생산해내거나,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그 과정을 극단적으로 진행하거나 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의 정답은 사실 중간이다. 중간이 옳을 때가 대부분이다. 적어도 일반적인 범주 내에서 누군가가 무슨 일을 벌였을 때, 사실 그건 그렇게 잘한 일도 아니고 그렇게 잘못한 일도 아니다. 그런 평가들은 양 극단에 위치하기 때문에 그 위치 자체로 극단적이다. 상식은 보편적인 거다. 항상 중심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 적당한 곳, 중간층에 머문다.

내 머릿속에는 아직 실천하지 못한, 현실화하지 못한 아이디어들이 많이 있는데, 언젠가는 그 아이디어들이 세상에 태어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개중에는 안 태어나서 다행인 녀석들도 있다. 99%다. 맞다. 원래 위대한 생각은 99%의 헛소리와 1%의 기발함으로 인해 탄생한다. 분명한 건 그 1%의 가능성에 관해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거다. 적어도 제대로 된, 믿을 만한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믿을만한 사람이 되면 된다. 이상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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