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핵심

고등학교 동창 중에 친하게 지내던 형이 하나 있다. 우리는 같은 반이었고 3분단 맨 끝자리에 앉은 짝이었다. 형은 정신적으로 많이 아픈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등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년을 유급하게 되었다. 증상이 심할 때는 간혹 쓰러지기도 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강해보이는 사람에게도 약한 면은 있는 거니까. 예를 들어 축구선수 중에 상대편 수비수한테 태클을 당해 부상으로 쓰러지는 거 말고 최근에 개인적으로 좀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쓰러진 사람도 있을 거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했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리그가 있는데 그중에 지금까지 단 한명도 없었다고? 역사상 세 명 정도는 있다.

반 친구들 모두가 그 사람의 이름을 불렀지만 난 끝까지 형이라고 했다. 그때는 그냥 그 호칭이 좋았다. 우리는 영화와 음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배트맨 비긴즈>와 <나비 효과>, <도니 다코>를 이야기했으며 비틀즈와 너바나, 백스트리트 보이즈를 이야기했다. 당시 나는 크리스찬 베일과 주드 로를 좋아했으며(실제로 고등학교 3학년 남자애 책상에 주드 로 사진이 붙어있을 정도였으니까) 애쉬튼 커쳐를 신봉한 나머지 데미 무어와의 결혼을 반대하고(제정신이냐?) 다녔다. 시나리오를 써서 서로에게 보여주기도 했는데 그중 형이 썼던 한 시나리오의 제목은 <평화의 핵심>이었다. 데카당스를 즐기던 주인공들이 점차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이야기였다.

졸업 이후에도 우리는 정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고 함께 광우병 시위에도 나서게 되었다. (현재로서는 내 자신 스스로도 믿을 수 없지만) 당시 나는 한 진보정당에 매달 당비를 납부하던 당원이었고, 양심선언을 한 뒤 숨어있던 의경을 지키고자 프란치스코 성당에서 사람들과 함께 비폭력을 외치던 사람이었다(지금 같았으면 사람들이 의경에게 다가가 격려의 말을 건넬 때 나는 실수로 “너 김일성이지?”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어진 교육감 투표에서도 수월성 교육에 반대하고 평등을 강조했던 한 진보정당 후보에게 투표했고 처참하게 패배했다.

우리는 술을 마시며 갖은 궁상을 떨었다. “아픈 학생들을 조금 더 배려해주겠다는 사람한테 희망을 건 게 그렇게 잘못이야? 안 그래도 가뜩이나 아픈데 왜 항상 아픈 사람이 실망하고 좌절하고 울어야 돼?” 온갖 푸념을 잔뜩 늘어놓고 난 뒤 노래방으로 향했다. 다행히 슬픔에 겨워 부를법한 지랄 맞은 노래들 따위는 부르지 않았다. 그냥 평소 좋아하던 노래들 중 아무 거나 불렀다. 그날 밤에는 함박눈이 펄펄 내렸다. 술김에 설원을 달리고 또 달렸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렀다. 그와의 연락은 자연스럽게 끊어졌다. 옛날 생각이 났다. 옛날 생각이 나면 날수록 달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래서 또 다른 동창 녀석과 함께 고등학교로 달려갔다. 학교가 시설 면에서 많이 바뀌었다고 들었는데 그걸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물론 교문에는 보안장치가 되어있었다. “걸리면 경찰 오는 거 아냐? 그냥 집에 가자.” “뭐 어때. 우리 여기 졸업생이잖아.” 녀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담장을 넘었다.

새벽의 정적 속에 칠흑 같은 어둠이 펼쳐졌다. 나는 플래시를 켜고 학교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달라진 건 많지 않아보였다. 내가 제일 많이 달라졌다. 세상이 못됐다. 세상이 나에게 못되게 구니까 나도 점점 못되게 된다. 나쁜 걸 배운다. 다 알면서도 자꾸만 나쁜 걸 배운다. 순수했던 시절에 만난 나의 형. 과연 그가 꿈꾼 평화의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데카당스에서 파국으로 넘어갈 때 결국 주인공들이 내린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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