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조각들

때는 바야흐로 한국전쟁이 한창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용감하게 군인이 되었다. 그때 바로 전쟁이 끝났다. 이제 총 들고 달려 나가려는데 끝났다. 외할아버지는 싸우지도 않고 참전용사가 되었다. 그렇게 국가유공자가 된 외할아버지는 서울에서 작은 지물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부유하지도 그렇게 가난하지도 않은 평범한 집안이었다. 위로 오빠 둘을 둔 막내딸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쭉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의 꿈은 항상 소박했다. 별 게 없었다. 그냥 가족들과 함께 무탈하게 사는 거였다. 엄마는 세상에 때묻지 않은 순수한 매력의 소유자였다.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기억의 한 조각이 있다. 또 한 차례 아버지와 심하게 다투고 난 다음날, 나는 여느 때처럼 공익근무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가 있는 곳까지 차를 몰고 왔다. 주차장에 차를 대놨으니 잠시 나오라고 했다. 주차장은 한적했다. 내 고집을 꺾기 위한 어머니의 시도에 사소한 말다툼이 생겼고 나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져 펑펑 울게 되었다. 나는 울면서 쉴 세 없이 예전 일들을 꺼내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을, 가장 힘들게 방황했던 시절을 이야기했다. 그때 엄마가 나를 도와줬던 게 진심으로 고마웠다고 말했다. 진심으로 미안했다고 말했다. 나 혼자 차안에서 울부짖었다. 잠시간 정적이 흘렀고 엄마는 고개를 돌렸다.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괜찮다고 했다. 엄마는 나에게 괜찮다고 했다.

엄마는 그 외에도 나를 도와준 일이 많았다. 아버지 몰래 도와준 일이 많았다. 그건 정말 너무 많아서 일일이 나열하거나 열거할 수가 없다. 함부로 세어볼 수가 없다. 그 셀 수 없는 사랑의 조각들은 시간이 흘러 기억의 조각들이 되었다. 그 기억의 파편들은 더 이상 엄마를 볼 수 없게 될 그날이 오면 그때 되짚어보기로 했다. 예상외로 화창한 기운이 감돌던 그날의 주차장을, 적막한 공간의 이미지를 기억의 연결고리로 삼아 차근히 되짚어보기로 했다. 그때가 되면 한번쯤은 되돌아볼 수밖에 없겠지, 지금 머릿속에 흐릿한 잔상으로 남아있는 퍼즐조각들이 하나둘 맞아 들어가게 되겠지, 그리고 그 조각들이 모여 엄마의 어느 때 모습을 완성하겠지,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조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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