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없이도 운다

누나는 방송국 공채로 입사하면서 정식으로 시작한 성우 일에 대해 복잡한 심경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만족스러운 부분과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서로 교차하고 있었다. 바쁜 일에 대한, 업계 사람들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했다. 몸 상태도 좋지 않아 가끔은 감정에 좌우되기 쉬운 상태로 빠져들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증상이 점차 완화되어갔지만 결혼을 하고 자기 가정을 꾸린 이후에도 가슴을 졸이곤 했다. 그리고 유산을 했다.

누나가 정서적으로 불안정했던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겪어온 가정불화로 부모에 대한 트라우마를 간직한 탓이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사후의 센티멘털’같은 것이었다. 가장 흔한 병이었지만 그만큼 심중한 마음의 병이기도 했다. 대학교 때 다녔던 학내 심리상담소는 졸업 이후에도 다녔다. 원래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선생님과의 친분으로 상담을 지속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시내에서 누나를 만나 저녁을 먹고 차를 마셨다. 그날 주로 오간 대화의 주제는 외로움에 관한 것이었다. 그냥 서로 별 얘기 안 했다. 각자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했다. 마지막에는 평생 아빠의 눈치를 살피며 자신 없이 살아온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앞으로 좀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카페를 나서면서 나는 누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남들한테는 이래서 못하는 말, 혹시 내가 이렇게 말하면 남들이 저렇게 생각하는 거 아냐, 하는 마음에 하지 못했던 말 같은 거 없이 그냥 우리끼리는 다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 “지금은 다 말 못해?” “아니, 지금도 그렇지만 지금보다 더 많은 걸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 어쨌든 우리는 남매니까. 갑자기 어른이 된 남매니까.”

누나는 고개를 돌렸다. 잔뜩 찡그리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 울음을 참고 있었다. 친동생 앞이라 그런지,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리기에는 아무래도 이상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는지 억지로 울음을 참았다. 눈물 없이 울고 있었다. 누나는 마음이 여렸다. 나보다 더 여렸다. 그러고 보면 역시 강한 사람은 없다. 사람은 다 약하고 모순적이다. 겉으로는 강해보이나 속으로는 강하지 않다. 그렇게 그 울음은 서너 차례 반복되었다.

나는 모른척했다. 하지만 사실은 안아주고 싶었다. 같이 부둥켜안고 울고 싶었다. 보는 눈이 많은 번화가에서 함께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맞다. 우리는 가끔 부둥켜안고 울고 싶다.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다 끌어 모아 뜨겁게 울고 싶다. 아무 말 없이 울고 싶고 아무 말이나 하며 울고 싶다. 이 또한 지나간다고, 시간이 약이라고, 흔해빠진 성장통일뿐이라고, 지나치게 진부한 말들을 절규하듯 쏟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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