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경계론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지구는 하나다. 지구야말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전체이기 때문이다. 다만 부분적으로는 다름이 존재하고 있는데 그 작은 다름이 온갖 커다란 문제를 야기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가란 그런 거다. 수도에서 지방으로 갈수록 북방계와 남방계, 표준어와 사투리 같은 생김새나 언어가 조금씩 달라지는 거처럼 자신이 속한 국가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모종의 특색이 더해지게 되는 것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자치권도 조금씩 나눠 갖게 된 것이다. 그게 다다.

요즘 같은 시대에 필요성을 주장하고 싶은 건 일종의 ‘탈경계론’이다. 쉽게 말해 더 이상 국가 대 국가의 틀로 사고하면 안 된다는 거다. 각자가 자신만의 이익을 좇게 되기 때문이다. 아주 약간의 손해라도 보기 싫어하는 마음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굳이 국가의 개념을 살리고 싶으면 지구를 지구라는 이름의 단일 국가로 인식하면 된다. 단언컨대 현재의 국가론, 즉 국가 별로 일일이 나눠 사고하는 프레임을 통해서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 중 아무런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 문제와 핵 관련 문제, 분쟁, 테러 등의 국제 평화 문제, 난민 문제, 역사와 종교, 민족, 영토 등의 지구촌 문제들을 결코 해결할 수 없다. 해결하려고 건드렸다 더 큰 싸움만 난다. 아무리 회담을 개최하고 골머리를 싸매봤자 근본적인 결핍이 청산되지 않는 거다.

이럴 때일수록 오히려 작은 패러다임 쉬프트가 필요하다. 일상생활에서부터 변화를 꾀해야 한다. 응원을 위해 존재하는 스포츠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 나머지, 일반적인 사회 분야 혹은 소셜 미디어에서 일상적으로 표현을 공유함에 있어 대놓고 자신이 속한 국가나 지역사회 따위를 옹호하는 일, 다른 사회를 비방하는 일이 촌스럽고 구리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거다. 마치 어린 시절에 배우는 테이블 매너처럼 일종의 매너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

한마디로 타자를 대하는 의전적 태도라 할 수 있는데, 그러한 태도가 교육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개개인의 몸에 배기 시작하고, 그 개개인이 성장해 성인이 되고, 그 성인들이 타 사회에 대한 폭넓은 이해도를 지닌 사회를 구성하게 되는 거다. ‘물론 이상적으로야 그렇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말이 되니, 이 병신아!’라고 반박한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원래 모든 이상주의는 전체주의적 폭력을 동반하지 않는 한 개인의 힘으로 작동시킬 수 없다. 한 이상주의적 개인을 현실주의자로 믿어주는 사람들이 필요한 거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나는 끝끝내 바보로 남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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