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더 실례잖아

불편한 게 있다. 선후배를 나눠서 사고하는 문화나 그에 따른 요상한 예의범절 등이 바로 그것이다. 모든 곳에서 우열을 가르고 싶어 하는 특성으로부터 기인한 것인데, 단적인 예로 이런 거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이라는 표현 자체가 구리지만, ‘나이 많은’ 인간과 ‘나이 어린’ 인간이 함께 술을 마실 때 어째서 나이 어린 인간만 고개를 돌려 마셔야 하는 걸까? 그리고 그게 왜 예의를 지킨 게 되는 걸까?

존경할 만한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정작 그 사람은 본체만체하고 딴 데를 보며 어깨와 목을 잔뜩 움츠린 채 ‘꼴깍꼴깍’ 소리나 내고 있잖아. 그게 더 수상해! 뭔가 꿍꿍이 있어 보이는 포즈잖아! 드물게는 윗사람과 담배를 피울 때도 마찬가지다. 담소를 나누다 슬쩍 고개를 돌려 쭈뼛거리는 뉘앙스로 ‘맛없게’ 빨고 있다. 무슨 조폭이니? 그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방법이란 말이야? 그게 최선의 예의 바른 모습이란 말이야? 그게 더 실례잖아!

굳이 머나먼 중국 춘추 시대 말기로 거슬러 올라가 유교 사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언어가 곧 문화이기 때문에 결국 한자 문화권에 해당하는 한국, 중국, 일본 모두 마찬가지다. 각각의 문화를 구성하고 있는 세부적인 요소들이 다를 뿐 거시적인 맥락은 유사하다(한국은 군대 문화 가산). 알파벳 문화권인 미주나 유럽과는 달라도 너무 많이 다르다.

나는 세계를 동서양의 프레임으로 구획하는 걸 지독히도 싫어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문제는 그동안 사용되어 온 언어가 이러하다 보니, 그 언어를 통해 구축되어 온 문화가 역사로 고착화되어 설령 단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고쳐 내기가 쉽지 않다는 거다. 내내 갈굼을 당하며 괴로워했음에도 시간이 흘러 본인이 그 위치에 오르게 되면 또다시 밑 사람을 갈구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우리 젊은 세대는 좀 더 교묘하게 저항할 필요가 있다. 역설적인 의미에서 좀 더 대담하게 기성세대의 싸대기를 후려칠 필요가 있다. 방법은 생활 속에 깃든 낡은 습관들을 조금씩 바꾸는 것이다. 우리는 대대적으로 뭔가를 바꾸는 행동을 취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작은 것부터 순응하지 않는 거다. 작위를 부작위로 바꿔 내는 거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들을, 고스란히 수용하고 있는 것들을 버리는 거다. 단지 그 행동을 하지 않을 뿐 그를 둘러싼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오히려 더 큰 예의를 갖추는 새로운 태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안다. 말은 쉽다. 하지만 그럼에도 생활상의 변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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