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 봤자 벼룩이야

어렸을 때 자주 아버지의 고향 춘천으로 성묘를 가곤 했다. 언젠가 왠지 모르게 어수선한 날이 있었다. 어른들은 나에게 ‘저쪽’으로 먼저 가 있으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저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어른들이 보이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앞을 향해 마구 내달리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달렸다. 대낮이었지만 한적한 시골이었기 때문에 길가에는 아무도 없었다. 교회에서 배운 대로 기도를 했다. 찬송도 불렀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왜 기도가 먹히지 않지? 내가 너무 배불렀나?’ 나는 어린 마음에 신고 있던 운동화를 벗어 든 채 달리기 시작했다. 대략 두 시간 정도 달렸다. ‘내가 무슨 이봉주니?’ 나는 그때 성인 남성이 족히 수십 분을 달려야 하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다.

바로 그때였다. 어떤 농부가 불쑥 나타나 내게 말을 걸었다. “길 잃어버렸니?” “네.” “엄마 아빠는 어디 있니?”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가족들이랑 성묘 왔다가 길 잃어버린 거 같은데.” 농부는 자가용을 끌고 왔다. 갑자기 그랜저를(당시 고급 차량이자 조폭의 전유물이었던) 끌고 왔다. 나는 너무 어리둥절한 나머지 ‘농부 치고 좀 사는데?’라고 말할 겨를도 없이 차를 타고 이동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 가족들이 보였다. 가족들은 나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엄마! 살려 줘! 아저씨가 날 납치하려고 해!” 결국 나는 그날 무지막지하게 혼났다. 친척들은 나를 위로했지만 나는 큰아버지의 추모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쉬지 않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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