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유나이티드 군단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여파로 당시 중학교 학생들은 축구에 미쳐 있었다. 2학년 때 나는 우리 반을 반 대항 축구 대회에서 우승시켰다. 비까지 내리는 바람에 결승전은 진흙탕 속에서 진행되었다. 전, 후반전 모두 무승부를 기록! 승부차기에서 최종 승리를 거머쥐었다. 3학년 때 대망의 월드컵이 열렸고 우리는 ‘레드 유나이티드’라는 축구팀을 창설했다. 유니폼을 학교로 배송시킨 나를 향해 담임은 “왜 단체로 옷까지 맞추고 난리야!”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인터넷으로 봤을 때와는 달리 자세히 보니 유니폼에 물고기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좌우지간 그 유니폼을 입고 매일같이 연습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와 축구를 많이 했던 한 체육 선생님을 보며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저 사람, 중학생을 상대로 전력으로 뛰고 있어.’ 가끔은 다른 구에 있는 학교들과 친선 경기를 벌이기도 했는데, 나는 당시 드리블의 황제였고 아이들은 나에게 ‘공 안 뺏기는 병’에 걸렸다고 했다. 경기 전날 나는 상대의 전력을 파악하고자 상대 팀 주장과 채팅으로 드리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보통 어떤 개인기를 쓰시는지?” “주로 헛다리 짚기를 써요. 많이는 못 돌리고 한두 바퀴 정도?” 다음 날 경기에서 만난 녀석은 공을 잡는 순간, 정말 헛다리 짚기만 수십 바퀴를 돌렸다. ‘혼자 운동 나왔니?’ 한번은 인근 여중으로 가 무단으로 경기를 펼쳤고, 상대 팀 파란 바지의 주인공은 패배의 분을 못 이겨 주차장에 있던 교사들의 차량을 동전으로 죄다 긁어 놨으며, 수돗가에 있던 빗자루와 대걸레들마저도 다 부숴 놓았다. 이러다 싸움이 날 거 같았다. 애써 태연한 척하고 튀었다. 집에 돌아와 채팅으로 싸웠다.

공포의 레드 유나이티드 군단은 대부분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원정 경기에 나섰다. 경기가 끝난 후 유니폼과 저지를 걸친 채 스포츠 가방을 늘어뜨리고 지하철역 플랫폼에 서서 붉은 노을을 맞던 때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중학교 졸업식이 끝나고 우린 마지막으로 함께 축구를 했다. 아이들은 각자가 배정받은 고등학교를 향해 뿔뿔이 흩어졌고 레드 유나이티드는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이후 고등학교 교내 축구 대회에서 또 한 차례 우승을 하게 되었지만 예전이 그리웠다. 열정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무언가에 미쳐서 살 때가 행복했다. 다 함께 우승을 꿈꿨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다시 한 번 가슴 벅찬 정열을 불태우며 유니폼을 땀으로 적시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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