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의 핼러윈

급작스럽게 비보를 접했다. 필리핀 보라카이에서 발생한 패러세일링 추락 사고로 인해 한국인 세 명 중 두 명 사망, 한 명만 기적적으로 회생. 그 유일한 생존자가 내 친구였다. 이 소식은 뉴스에도 보도되었다. 기상 악화로 판단되면 보트 쪽에서 자신들의 배가 뒤집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직접 줄을 끊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친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쭉 알고 지낸 아이로, 여대생이 되어 어학연수를 떠났다 봉변을 당한 것이었다.

출국 전, 우리는 송별회를 열어 직접 만든 이별 노래를 선물해 주었다. 그게 영원한 작별이 될 뻔했다. 그녀는 추락 후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의식이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곧장 현지로 날아가 그녀를 서울로 데려왔다. 친구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다. 사경에서 깨어난 그녀는 그저 살아 있는 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죽은 친구들에게 미안한,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오묘한 감정을 느끼는 듯 했다. 그들의 몫까지 대신 살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수개월이 흘렀다. 그녀는 정상 생활을 시작했다. 우리는 모처럼 다시 뭉쳐 놀기로 했다. 때는 핼러윈이었다. 우리는 핼러윈 파티에 참석했고 어쩌다 보니 늦게 귀가하게 되었다. 배터리 부족으로 그녀의 폰은 이미 꺼져 있었다. 우리는 차로 친구를 집 앞까지 바래다주었고 그곳에서 철퇴를 든 사나이를 목격할 수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였다.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너희 다 내려! 안 내려?” 아버지는 보조석에 앉아 있던 나의 멱살을 잡아 흔들었고 나는 보조석에 앉은 채로 들썩였다. ‘이것이 바로 넥타이 끈에 목 조이는 월급쟁이의 삶인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외쳤다. “저도 빨리 내리고 싶은데 안전벨트에 꼈단 말이에요.” “내가 해결할게.” 운전석에 앉아 있던 녀석은 남자답게 박차고 나갔다가 바로 싸대기를 맞았다. 당당하게 나간 거 치곤 되게 차지게 맞았다.

사실 그때 우리는 얼굴에 귀신 분장, 피 분장을 하고 있었다. 곁에서 아버지를 말리느라 경황이 없던 어머니는 불쑥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괜찮아요?” “분장입니다.” 다급한 사태 속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서로 머쓱해 했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이후 언젠가 그녀의 집에 놀러 가게 되었을 때,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예상보다 빨리 아버지가 돌아온 것이다. 나는 장롱에 숨었다. 진짜로 장롱에 숨었다. 그거 때문에 더 혼날 뻔했다. 만약 아버지가 옷을 갈아입으려고 장롱 문을 열었으면 바로 싸대기였다.

결국 우리는 다 함께 근처 호프집으로 이동했고 아버지는 우리에게 맥주를 쐈다. 거의 죽은 거나 다름없던 외동딸이 구사일생으로 겨우 살아 돌아왔는데, 나은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위험하게 밤늦게 돌아다니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날 일은 잊자고 했다. 취기가 돌았다. 아버지의 눈시울은 살짝 붉어졌다. ‘이러다 또 맞는 거 아냐?’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날의 폭주는 사랑하는 딸을 지키기 위한 고통의 몸부림이었구나. 세상 부모는 다 똑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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