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고백은 사양한다

성년의 날 즈음이었다. 그 자식은 아무도 없는 노천극장에 앉아 나에게 고백을 했다. “나 사실 너 좋아해.” 고개를 숙인 채 벌벌 떨며 내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충격적인 동시에 안쓰러웠다. ‘너 빨리 수염 안 밀어?’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제야 슬슬 모든 퍼즐 조각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범인은 이 안에 있어!’가 아니라 ‘잠깐만, 이놈이랑 나랑 목욕탕도 자주 다니고 그랬는데? 어쩐지 그때마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라니까! 아니, 그보다 예전에 이 녀석 집에서 자고 간 적도 있었는데 그때 침대에서 날 얼싸안던 게 우정이 아니었단 말인가! 사나이의 뜨거운 우정이!’ 바로 거절. 녀석은 군대를 가 버렸다.

그로부터 대략 일만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나와 일행은 클럽에서 한 아리따운 태국 여성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다 함께 택시를 타고 떡볶이 가게로 향했다. 그녀는 택시 안에서 내 손을 움켜잡았다. ‘왠지 손이 좀 아픈데?’ 떡볶이를 다 먹은 뒤 하나둘 집으로 향했고, 우리 둘만 남게 되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놀았다. 문제는 시간이 너무 갔다. 아침 해가 떠오른 것이다! 동녘의 태양은 비정하게도 광활한 대지를 비추었고, 덕분에 나는 그녀의 발볼을 보게 되었다. ‘여자치고는 살짝 넓은데?’ 그녀는 나에게 호텔로 가자고 했다. 나는 그녀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형?” 우리는 멍하니 대화를 나눴다. “몰랐어? 나 여장 남자야. 난 네가 아는 줄 알았어.”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일화들이 응축되어 나의 일상에 녹아 있다. 이를테면 한때 패션에 심취해 매니큐어를 발라 봤을 때, 지하철역에서 웬 대머리 아저씨가 따라붙으며 “손을 왜 이렇게 예쁘게 했어? 잠깐 이리 와 봐.”라며 개수작을 부린 적도 있다. 또 그럭저럭 알고 지내던 한 게이 동생 놈은 나에게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사랑해, 형.” ‘보통 사랑해 다음에 형 오냐? 단어의 조합이 훌륭해.’ 물론 가끔은 이익 아닌 이익, 원치 않는 이득을 보게 되는 일도 생겨나곤 했다. 가령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면 한 남자 직원이 다른 손님들에 비해 유독 많은 양의 아이스크림을 담아 주곤 했다. 그리고 굉장히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많이 드리면 다음에 또 오시겠죠?” ‘오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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