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하지 마

어느 날 역전을 서성이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한눈에 봐도 가출 소녀들이잖아.’ 여고생들이었다. 이제 갓 중학교 정도를 졸업한 연령의 아이들이었다. “죄송한데 차비가 없어서요. 천 원만 주실 수 있으세요?” 나는 문득 일전에 경험이 떠올랐다. ‘지갑을 잃어버리셨구나. 얼마면 될까요?’ 그때 난 멍청하게도 진짜로 차비가 필요한 줄 알았다. “차비할 거 아니잖아. 밥 먹었어?” 소녀들은 망설였다. “아뇨, 아직 못 먹었어요.”

우리는 근처에 마땅한 곳이 없어 패스트푸드점으로 향했다. “할 수 없이 이거라도.” “감사합니다.” ‘영’자 돌림의 이름을 가진 소녀들이었다. “가출했어?” “네.” “왜?” 아이들은 저녁을 먹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집에 가면 아빠가 괴롭혀요.” “술 먹고?” 굳이 전해 듣지 않아도 어떤 종류의 괴롭힘인지 대략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애써 물어보지 않았다. 역시 술이 문제다. 사람은 술을 빚고 술은 나쁜 일을 빚는다.

“맨날 이렇게 차비 달라고 해서 그걸로 밥 먹는 거야?” 아이들은 부끄러워했다. “보통 차비 달라고 말 걸면 어른들 반응이 어때?” “보통 안 줘요. 남자들 같은 경우는 백이면 백 거의 술 사준다고 해요. 술 먹인 다음에 어떻게 한번 해보려고.”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어?” “많았죠.” “그럴 땐 보통 어떻게 해?” “도망가요.” 나는 식사를 마친 아이들에게 뭐가 더 필요한지 물었고, 아이들은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했다. “가자.” “네? 진짜요?” 우린 편의점으로 향했고, 나는 ‘성인’의 지위를 이용해 ‘미성년자’들에게 담배를 잔뜩 사다 주었다. ‘전혀 정의롭지 못한 일이잖아! 그리고 밥값도 없는 주제에 지금 쌈 빨 때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보기 드물게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싸움에 타고난 놈이 있어. 본능적으로 때리고 피하는 놈이 있지.” 학창 시절, 아버지는 싸움을 잘했다. “내가 먼저 시비를 건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그러다 누가 나한테 시비를 걸면 반 죽여 놓는 거지.” 교사가 되어서도 교장, 교감의 불의에 대항했고, 학생들 중에서도 배구공을 잃어버렸다가 두들겨 맞은 놈, 버릇없이 행동하다 매가 부러질 때까지 맞은 놈 등 사례가 많았다. “잘못됐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남자라면 싸워야 할 때가 있는 거야.”

훗날 그의 아들은 다 큰 어른이 되어 미성년자들과 함께 쌈을 빤다. 정말로 녀석들은 신나게 담배를 피워 댔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신이 난 얼굴이랄까. “그래서 내일은 또 뭘 할 건데?” “그러게요.” 둘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내일 지하철 투어 갈래?” “오케이. 콜.” “그게 뭔데?” “그냥 지하철 타고 돌다 종점에서 내리는 거예요. 돈도 별로 안 들고 시간도 때우고.” ‘분명 학교에 있어야 할 녀석들인데.’ 나는 쪽지를 써서 건네주었다. “여기 내 이름이랑 연락처. 배고플 때만 연락해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발걸음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우리 어른들이 앞으로 뭘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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