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은 없다

한국은 최빈국에서 경제 대국이 되었다. 경제 규모는 대략 10위이며(명목 GDP와 실질(구매력) GDP를 고려했을 때, 그리고 그를 1인당 GDP로 환산했을 때 양적인 측면과 질적인 측면에 있어 우리는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과 함께 세계 10대 ‘선진 대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미 수년 전부터 다수의 국제기구들은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하기 시작했고, 앞에 K마크를 붙이지 않는 게 없을 정도로 강력한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 이 기이한 대중문화 현상은 과거 홍콩 영화나 일본의 애니메이션, 게임보다도 규모나 성장세, 영향력 면에서 압도적이다.

물론 경제 분야만 해도 생산량과 소득 수준을 제대로 환산해 고루 따져야 하며, 그 환산의 결과마저 통계의 함정과 허를 지니고 있다(근본적으로 이런 통계 자체가 단순히 어느 나라에 돈 많은 기업들이 더 많은가와 관련할 수 있다). 다만 세계 경제 불황으로 인한 교역의 감소, 주요 수출국의 입장에서 안고 갈 수밖에 없는 통화 정책, 상호적으로 달리 책정되고 있는 각국별 적정 환율 등으로 인해 아무리 저평가를 받는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1인당 국민 소득은 이미 3만 달러대 상당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 외에도 따져야 할 건 많다. 경상 수지, 민간 소비, 성장률, 취업률, 실업률, 복지, 세금, 물가, 사회 간접 자본, 최저 임금, 대졸 초임, 지하 경제, 국방비, 엥겔 계수, 지니 계수, 국가 부채, 가계 부채, 주식, 국가 신용 등급, 인간개발지수 등 너무나도 많다. 아울러 우리에게 요구되는 노동 시장 개혁과 규제 완화의 필요성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선발 주자로 달리고 있던 서구권 국가들도 함께 겪고 있는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지표들을 함부로 맹신하자는 게 아니라, 그만큼 복잡하다는 거다. 과연 ‘헬조선’이라는 자조를 섞어 가며 가볍게 냉소할 수 있을까? 어떤 현상을 비판하기 위해 모두가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공신력 있는, 신빙성 있는 몇 개의 자료에는 근거했으면 좋겠다. 두루뭉술하게 뭉뚱그린 감정의 복합체 말고 근거 있는 비방 말이다. 네거티브의 힘은 실로 강렬해서 금세 여론을 만들고 정서를 만들어 사회를 낙담시킨다. 사회적으로 부정의 정서가 공유되는 것이다. 물론 ‘헬조선’이라고 하는 용어가 이렇게까지 널리 통용되게 된 데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을 거다. 단순히 선진국이냐 아니냐 따위의 명제는 별반 중요하지 않다. 시민들 하나하나가 ‘진짜로’ 잘사는 게 중요하다.

오히려 그 용어는 대기업 위주의 기형적 구조, 하청 업체들은 죽어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 살려면 하청을 노릴 수밖에 없는 구조, 더불어 취직도 노릴 수밖에 없는 구조, 세대 간의 갈등, 무조건적으로 노력만을 강조하는 기성세대의 악랄한 풍토, 지적 수준은 이만큼 올라갔는데 그 올라간 기대치에 반해 나타나는 사회적 기회 불균등, 기득권 위주의 딱딱한 서열 관계, 창의성 경시, 과열 경쟁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상대적 박탈감을 표현한 말일 거다. 안다. 하지만 정말로 우리가 의기투합해서, 사회적으로 잘못된 무언가를 바꿔 보자, 진짜 전 연령이 똘똘 뭉쳐서 제대로 한번 바꿔내 보자, 라고 사람들을 독려하고 규합하기에는 말이 너무 격하다.

모든 용어에는 출처가 있다. 유래를 모르고 무심코 그 말을 쓰던 사람들 중에는 아마 그 출처, 해당 인터넷 커뮤니티가 가진 문제점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헬조선’은 몇 년 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탄생했고, 처음에는 ‘헬조센’이었다. 조센은 혐한파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헐뜯을 때 사용하던 용어로, 처음부터 한국을 조소할 목적으로 사용한 단어인 것이다. ‘노변정담’이라는 말이 있다. 화롯가에 둘러앉아서 서로 한가롭게 주고받는 이야기를 뜻하는 말이다. 물론 한가롭게 할 얘기도 아니고, 한가롭게까지 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죽일 듯이 말할 필요도 없다. 정말로 뭔가를 바꿀 수 있는 힘, 화합의 힘에는 분명 ‘화롯가’가 필요하다.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가장 설득력 있는 어조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사안의 핵심을 짚어 나가는 어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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