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을 다 가져 봐

과거 손석희 아나운서는 모 방송에서 “저는 중립입니다. 그리고 굳이 따지자면 저는 인본주의자입니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걸 본 누군가는 나에게 무슨 주의자냐고 물어봤고 나는 이기주의자라고 대답했다. 맞다. 나는 이기주의자다. 아니, 사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이기주의자다(손석희 아나운서가 인본주의자가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약자의 편에 서서 거악에 맞서 싸우는 행위는 분명 고맙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엄청나게 숭고하지는 않다. “어제 그 여자 술 좀 먹였더니 겁나 막 안기는 거야.” “재빨리 고추로 3단 기어를 넣지 그랬어?” 물론 이딴 대화보다는 심원하고 범용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진보와 보수? 마찬가지로 딱히 대단한 정의감으로 하는 게 아니다. 아니, 대단한 정의감이 맞다. 그런데 그 정의감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취향이자 기호에 가깝다. 다시 말해 그 일을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그 일을 이루어 냈을 때 비로소 억압으로부터 해방이 되는, 안정감이 드는, 만족감이 드는, 뭐 그렇고 그런 거라는 거다. 그리고 거기에는 가시적, 비가시적,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멋있다, 멋지다, 라는 감정이 수반되고는 한다.

“그 남자는 참 정의감이 넘쳐. 뭐랄까, 든든한 나무 같은 사람이야.” ‘너 옆에 있던 실제 나무 잘못 봤지?’ 정치? 앞선 예시처럼 여자를 꾀기 위해 늘어놓는 무용담보단 낫겠지만, 사실 근원적으로는 그마저도 대동소이하다. 허세를 부리는 일과 마찬가지로 진솔하고자 하는 태도 역시 자위하는 것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각자의 기준과 틀에 맞춰 멋있어 보이고 싶은 거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사회에 속한 다른 동물들에게 본능적으로 매력을 나타내고 싶어 한다.

이건 꽤나 존재론적인 가치로, 자신의 상태가 좋을 때 더욱 좋게 비춰질 수 있을 거라는 이기를 함의한다. 결국 우리는 사랑 받기 위해 평생 이 지랄하며 사는 거다. 그 겉 방식만 다를 뿐 속 내용은 똑같다. 사랑보다 야망을 앞세워 봤자 그 역시 결국 성공에 대한 갈망, 성취에 대한 욕구, 인정 욕에 해당한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 일 역시 광의적으로는 사랑이다. “온 세상을 다 가져 봐. 내가 힘이 되어 줄게.”라는 한마디가 한 사람을, 그 사람이 속한 전체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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