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꿈

매일같이 혼이 나는 바람에 어린 시절의 누나와 나는 항상 기죽어 있었다. 언젠가 아버지는 내가 쓴 원고더미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고, 나는 말없이 엎드려 조각들을 주워 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 가면서 점차 아버지에게 대들기 시작했고 “아버지는 왜 이렇게 말이 많아요?”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언젠가 한번, 아버지는 양철통으로 누나의 머리를 내리쳤다. ‘의외로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잖아?’라고 생각할 틈도 없이 아버지는 흥분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어머니는 다급하게 외쳤다. “말려!” 나는 기다렸다는 듯 있는 힘껏 어깨를 밀쳐냈고 아버지는 공중에 붕 떠 버렸다. 생애 최초로 몸싸움을 벌인 거다.

건강상의 문제로 퇴직을 한 이후, 아버지는 화장실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 적도, 부엌에서 라면을 끓이다 비틀거린 적도 있었다. 그리고 신경 쇠약 탓인지 약기운 탓인지 모를 눈물을 자주 보이곤 했다. 한번은 자신의 과거 이야기, 고정 레퍼토리를 장황하게 늘어놓다 말고 오열을 했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달려가 아버지를 껴안았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경어체가 마구잡이로 뿜어져 나왔다.

과거 할아버지는 청소부, 인부, 택시 운전사 등의 직업을 전전했고, 아버지는 청소년기에 콩나물 하나 사러 몇 리를 걸어갔으며, 대학 자취 시절에는 너무 배가 고파 찌개에 얼굴 묻은 채 일어나지 못했다. 친척 집에서는 “밥 훔쳐 먹으려고 왔지?”하면서 할머니를 거지 취급하기도 했고, 퇴근하고 돌아온 할아버지의 발을 씻기던 큰아버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다 다툼을 빚기도 했다. 아버지에게는 설움이 있었다. 우리 남매는 슈퍼마켓에서 함부로 천 원짜리 과자를 사왔다는 이유로 야단을 맞았다. “너희 할아버지가 그거 벌려고 남의 집 벽 다 뜯어내고 하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도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냈다. 우리는 어려서 아직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병동에서 철없이 가위바위보 놀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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