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미래

사실 이 자서전은 나에게 있어 고해성사에 가깝다. 젊음에서 마냥 젊지만은 않은 나이로 넘어가기 전에 드리는 미사랄까. 정신적 외상을 치유하는 방법은 문제를 안으로 감추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 토악질을 해내는 거다. 따라서 서사적 과장은 없지만 수사적 과장은 있을 수 있다. 다소 과격한 표현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진의가 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러한 현상의 단면을 역설적으로 풍자하고자 하는 셈이다. 그렇게 함으로 인해 비극이 희극으로 바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생은 기본적으로 비극이다. 그런데 평생 기본만하고 살 것인가? 그 이상은 우리에게 달렸다. 물론 있는 놈들이 더 한 세상에서 약자가 세상을 뒤바꿀 순 없다. 다만 부끄럽지 않게 살 수는 있다. 멈추지 않고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건 세상을 다 때려 부수고자 함이 아니다. 부끄럽게 살지 않기 위해 벌이는 최소한의 요구, 그 요구의 몸부림이다. 세상은 지구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판의 경계들로 이루어져 있다. 온화함으로 제대로 된 판을 깔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고, 부당함에 맞서 견고한 판도 깰 줄 아는 어른이 되고 싶다.

진심이다. 단 한 번뿐인 우리의 인생 속에서 과연 무엇을 이루어 내고 싶은지에 관해 하루에도 골백번씩 생각이 바뀌고 혼란스럽다면, 기묘한 확신감에 차있다 뼈저린 실패를 겪는 상처와 위안의 순환을 매번 경험해나간다면, 언젠가는 내가 받은 위안을 누군가에게 돌려줄 줄 아는 진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돌려주자. 그곳에 밝은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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